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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40대 시절에는 검버섯이나 잡티가 없었습니다.
백옥은 아니었지만 노르스름한 피부에 적당한 토실함이 아직은 젊은 광채를 잃어버리지 않은 얼굴이었다는 것이죠.
그때는 생긴 건 저로서 충분했기 때문에 외모 정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스러질 겉모양까지 굳이 신경 써가면서 가꾸지 않았습니다.
그래선지 그때는 '지금 여기'보다는
'먼 곳, 여기 아닌 곳, 내가 아닌 곳'에 시선을 두고 살았습니다.
겉모습보다 훨씬 중요한 '생의 완성', '삶의 깊은 의미', 죽을 때까지 내가 '이루어야 할 일'이 지금 여기 말고 저기 먼 곳 어드메쯤 있을 것 같았더랬죠.
그것이 외부에서 발견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찾아도 온갖 책을 뒤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이 저 먼 곳 따위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보고서를 저 자신에게 들이밀었죠.
그래서 이제 시선의 후레시를 안으로 비춰보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저는 키가 조금 더 작아졌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제 안에 있는 우주를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내가 누구인지---------------------그건 모릅니다!(이름, 나이, 국적, 주소 그런 것 말고요)
무엇을 좋아하는지------------------그건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네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주적이고 쾌활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생을 마감하고 싶은지-------정신과 영성을 보존한 채 마감하고 싶어요!
세상에 어떤 것을 남기고 싶은지----꿈을 이룬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저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얼굴을 보았지요.
검버섯이 페인팅한 무늬처럼 그려지고 잡티는 마당의 잡초처럼 생겨나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고울 땐 곱게 볼 줄 아는 눈이 없었고(그렇지만 지나갔습니다) 곱지 않은 지금은 고왔던 때의 고마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린도 후서 4 : 16)'는 원리를 알기 시작했거든요.
척박한 정신의 땅에 샘물을 흘려보내듯 책을 읽고 사유를 나누고 책 내용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 제 모습에 아주 가끔 벅차고 자주 실패합니다.
실패의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모두 흔한 것들입니다. 흔하다고 해서 쉬운 건 아니고요.
무지, 미련함, 나태함, 안주하는 마음, 어리석음이 거미줄처럼 엉켜있어요.
그래서 겨우 탄탄한 것을 들여놓아도 곧잘 녹아버리곤 합니다.
제 안을 확인한 후에 연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나서 조금씩 거미줄을 거두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감정의 주체는 정신이니까 감정보다는 정신에 집중하는 방법으로요.
제 삶이라는 필드를 바꾸려면 제 행동이나 패턴을 바꿔야 하는 거니까요. (새벽독서에서 얻은 멋진 문장입니다!)
의식의 문을 열어 중심을 잘 세워 안으로 채우면 입지가 점점 좁아진 거미줄은 그 탄성을 잃고 맥없이 끊어져 버리게 된다고 믿으니까요.
무지, 미련함, 나태함, 안주하는 마음, 어리석음도 이미 제게 있는 것이니까 탄력 있는 정신의 것으로 차곡차곡 들인다면 그것들도 세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
가족과 친구와 잘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보다는 자신의 내면과 더 친해지세요.
더 깊이 자신을 파고 또 파세요.
나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에 행복해하는지 질문하세요.
내 안에 무얼 담는 게 가장 나일 수 있는지 생각해 주세요!
내가 광대한 존재라는 걸 아세요.
내가 가장 재밌는 놀이공간임을 발견하세요.
나랑 놀아도 지루하지 않고, 심심하지 않고, 질리지 않는답니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일뿐이고, 또 그렇게 되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삽니다. 과거는 기억일 뿐이고 미래는 기대에 불과합니다. 나는 살아 있음을 사랑합니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변화와 새로움을 더 좋아합니다. 나쁜 것이 어떻게 나아졌는가에 대한 기록은 아직 없습니다. 나는 다만 어떤 것을 믿을 뿐이며.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나의 존재를 자각합니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어떤 존재의 피조물이라는 것과, 또한 내가 인류의 일부분이라는 사실도 잘 깨닫고 있습니다. (주)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저는 빠가각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 인식에 실금이 그어지고 깨지는 명쾌한 소리와 그 틈을 타고 들어오는 빛을 봅니다.
아, 얼마나 기쁜지...
독자님들도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