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 덕후들이 그렇듯이 나도 노트가 여러 권이다.
시를 쓰는 노트, 수업 내용을 필기하는 노트, 코칭 내용을 휘리릭 적어두는 노트, 필사하는 노트 등등.
당연히 펜도 이것저것 여러 종류다.
필사할 때 쓰는 피그마 펜, 일상적으로 쓰는 젤리펜, 굵고 진하게 나오는 네임펜, 캘리그래피 용 붓펜, 손자가 준 별이 찍히는 도장펜, 사은품으로 받은 삼색펜 등등이다.
나는 이들이 쓰이는 곳을 잘 알고 있다.
노트도 펜도 가장 적합한 자기 자리가 있다.
그들은 중구난방으로 쓰이지 않는다.
가끔은 필사할 때 쓰는 펜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피그마펜으로 편지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자리를 바꾸는 경우는 있지만 펜은 펜으로 쓰이고 노트는 노트로 쓰인다.
나는 펜이나 노트만큼 온전한 자신으로 쓰이고 있을까?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데
글도
나도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문구류는 제작자가 각각의 특징을 잘 안다.
그러나 펜과 노트는 사용자가 써 봐야 결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장착된 요소로 내용을 창조한다.
나는 나의 결을 모른다.
나의 제작자가 알 것이다.
내 안에 무엇이 얼마큼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단순히 무언가 소유했다는데서 창조가 일어나는 건 아닐 것이다.
존재 속에서 불을 밝혀야 창조가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부모님이 전라도 출신이다.
전라도에서는 '쓰다'라는 말이 '켜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아야, 불 잠 써라."(얘야, 불 좀 켜라)
지금 내 창조의 방은 너무 어둡다.
나를 밝혀 글을 비추고 싶다.
나여야만 나오는 글.
나여야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어두운 데서 불을 켜듯이 나의 어두운 글의 공간에 환하게 창조의 불을 켜고 싶다.
모든 사물에는 쓰임이 있다.
노트도, 펜도, 나도 그렇다.
각자의 사명은 쓰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