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의 칼싸움을 통해 얻은 깨달음
얼마 전 아이들에게 장난감 칼을 사줬다. 색깔이 화려하고 소리가 요란한 조금 가격이 나가는 칼이었다. 초2 첫째가 핸드폰 대신 선택한 장난감.
요즘 아들 둘이 하교, 하원하자마자 하는 첫 번째 일은 그 칼을 가지고 노는 일이다. 우선 눈으로 잘 있는지 확인하고 손으로 여기저기 눌러보다가 둘이 눈빛이 부딪히면 어김없이 두 개의 칼이 허공을 가른다.
나는 그럼 걱정스러운 눈빛과 단발의 한숨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어쩔 때는 남편도 거기에 합세해서 3 총사가 되어 거실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린다. 내 자리는 식탁의자.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저들에게는 나에게는 없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그 묵직한 장난감 칼을 중심으로 남자 셋을 뭉치게 만드는 그 무엇.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순수함'이더라.
아무 목적 없이 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순수함.
놀이를 통해서 내가 무언가를 달성하지 않아도 되는
놀이 자체가 목적이고, 오로지 그 순간만이 전부이다.
삶도 그렇게 순수함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별 다른 큰 목적의식 없이 그냥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존재하는 시간에서, 공간에서 마음껏 내 존재를 만끽하며 말이다.
목적의식이 없다는 것이 나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미래에 이룰 무언가를 위해서 현재의 나를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시선을 자꾸 밖으로만 돌리려고 하기보다 내 안으로 가지고 오는 연습이 필요하다. 시선이 밖에 머물면 타인과 비교하게 되고, 위축되거나 거만해지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나에게 집중하면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고, 그 무언가에 또다시 집중하며 나를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동굴 안에서 밖으로 꺼내주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좋은 아파트에 사는 게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 같은 우리 어른들의 현재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허해지며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기분이다.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는 즐기면서 살아가라고 외치는데, 세상은 자꾸 그 어린아이를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삶의 마지막에 행복한 사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내 안에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사랑을 잃지 않고 나를 돌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며 살아간 사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