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떠나보낸 생명에 대한 애도

미안해

by 고요한마음

나는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계획임신이었다. 두 아이 모두 계획한 지 3~5개월 안에 임신이 되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었다. 임신준비하는 과정에서 몸에 되도록 좋은 걸 먹으려 노력했고, 남편 또한 절주하고 운동하며 준비한 탓에 건강한 아이들이

선물처럼 우리 부부에게 와주었다.


그렇게 두 아들을 낳고 키우며 딸 하나만 있다면 참 좋겠다는 작은 소망 같은 걸 마음 한편에 두고 살았다. 머리를 빗어주고, 묶어주고, 꽃분홍 신발에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는 예쁜 딸이 있다면 뭔가 삶이 더 충만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아이를 하나 더 낳아 키우기에는 경제적인 것도 무시할 수 없었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단념하고 지냈다.


그러던 중 하늘의 장난이었는지 남편과 나의 오판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임신을 하게 되었다. 하필 남편이 인천에서 근무하고 있던 주말부부였을 때.


나도 일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평일에는 오롯이 나 홀로 육아였고 '임신'은 우리 부부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일주일 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새 생명에 대한 고마움 같은 건 고사하고, 기쁨도, 애착도 없이 일주일이 흘러갔다. 비슷한 일을 겪은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병원 상담까지 받았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그래도 낳아야지'라는 최소한의 양심이 작용한 것 같다.


두 아들이 너무 예뻤고, 아이들이 크면서 주는 기쁨과 환희가 무엇보다 컸기 때문에. 그리고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어려운 결정을 내린 후 나 홀로 육아와 부대 일을 병행하며 아슬아슬하게 임신 극초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생명의 심장소리도 듣지 못한 상태였기에 부대에는 말도 꺼내지 못한 상태였다.


임신 6주 차 주말 남편은 훈련 준비 때문에 출근을 해야 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대 코로나 환자가 급증해서 남편이 집에 오기 힘든 상황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혼자 아이들과 맞는 주말 아침은 너무 가혹했다. 피곤함이 온몸으로 쏟아졌고, 극도의 예민함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아이들을 거실에 방치하고 홀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을까. 거실에 나와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데 정말 자궁을 칼로 휘젓는 듯한 찌르는 고통이 몰려왔다. 순간적으로 '아차'하는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다.


준비되지 않은 몸이었고, 반가운 임신이 아니었으며, 귀하게 여기지 않은 탓이었다. 그대로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생명은 그렇게 갑자기 흘러가 버렸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임신을 확인한 병원에서 이번에는 유산을 확인받았다. 수술날짜를 잡고 급하게 시어머니를 호출해서 아이들을 맡겼다. 모든 게 급하게 홀로 이루어졌다. 임신확인도, 유산도, 수술도.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르겠다. 어쩔 수 없었다고 나를 위로하고 싶은 걸까.


눈물을 흘렸는지 흘리지 않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리 충격이 크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는 아이러니. 1%의 안도감마저 느꼈다고 한다면 뭇매를 맞을까?


지금 와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렇게 보내버린 생명에 대한 애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이후 남편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안 되니까. 나를 위해 남편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였다.


나에게 마지막으로 찾아와 주었던 그 생명에게 단순한 미안함을 뛰어넘는,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적당한 표현을 못 찾겠다)을 느낀다.


일종의 애도.


귀하게 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 생애 찾아온다면 그때는 더 따뜻하게,

사랑으로 품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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