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너를 만나러 갔더라면
친구야, 거기서 잘 지내지
고등학교 학창 시절 내가 함께 어울려 노는 무리에는 공부는 잘하고 성격은 도도하지만 외양은 귀여운 B라는 친구가 있었다. 키는 아담하고 얼굴은 동그랗고 눈은 쌍꺼풀 없이 작지만 웃으면 고양이 눈처럼 얇아지는, 그리고 두 볼이 항상 발그스레한 얼굴을 가진 친구였다. 성격은 그리 살갑지는 않았지만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친구였고, 수학을 잘해 이과였던 걸로 기억한다.
무리 중에 한 명이기는 했지만 1:1로 깊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 집안 사정이라던가, 고민거리 등을 서로 모르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B가 학교에 결석을 하게 되었고, 그 사건을 계기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그 친구가 가진 '아픔'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집안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고 아버님 몸이 편찮으셨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충청권에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아버님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대학 진학도 포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들은 모두 다른 대학교로 뿔뿔이 흩어져 서로 가끔씩 안부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B와는 연락이 닿지 않아 소식을 모르고 있던 찰나에 B와 연락을 하고 지내던 다른 친구 덕분에 또 다시 고교 시절 무리 친구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미 B의 아버님은 돌아가신 후였고, 동생과 둘이 집을 구해 지내고 있다고 했다. 평소 겉으로는 도도해 보이지만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던 B에게 미안한 감정과 더불어 이제라도 다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이가 되어보자는 취지에서 다 같이 B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그리고 B는 내 생일을 기념해 본인이 직접 만든 케이크라며 나에게 선물을 해주었다. 그때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정말 감동이었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던 장면. 수줍게 케이크를 전달하던 그 친구의 표정. 그리고 너무 맛있었던 케이크의 맛까지. 내 생에 처음으로 받아본 수제 케이크였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내가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어 또 다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B가 불현듯 생각나 문자를 먼저 보냈다. 아마도 내 생일이 다가와 케이크를 선물해줬던 그 친구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잘 지내지 B야"
"응 난 잘 지내~ 00로 이사 왔어"
마침 B가 이사 온 곳이 내가 근무하는 지역과 가까웠기에 우리는 조만간 곧 보자는 의례적인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인사가 B와 내가 이 세상에서 나누게 된 마지막 대화이자, 마지막 인사였다.
그렇게 연락을 주고받은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다른 친구로부터 B가 '세상을 등지고, 떠났다'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도중에도 '나와 그 친구가 만약 만났더라면', '그냥 하는 인사말 정도가 아니라 정말 내가 그 친구를 만나러 갔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지금도 역시 그 생각을 마찬가지로 한다. 정말 만약 그랬더라면 그 친구의 마지막 선택을 내가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장례식장에는 그 친구의 어머님이 홀로 앉아계셨다. 사람 10명도 들어가기 어려운 크기의 장례식장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4. 5. 식목일 내 생일이다. 그 친구가 만들어줬던 생일 케이크가, 그 친구의 귀여운 얼굴이, 툭툭 내뱉던 솔직한 말투가 유난히 생각난다. 도대체 무엇이 그 친구를 그토록 괴롭혔던 걸까. 그냥 차라리 너무 힘들다고, 살아낼 힘이 남아있지 않다고 하소연이라도 나에게 해줬더라면. '만약 살아있었더라면'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턱 끝까지 차올라 목이 멘다.
친구야, 그때 너를 만나러 가지 못해 미안해. 부디 그곳에서는 모든 마음의 짐 내려놓고 편히 지내기를 바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