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기억하는 시골
친정 엄마밥이 주는 위로
우리 엄마 고향은 전라도 정읍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 놀러 가면 툇마루에 항상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문은 창호지에 문고리는 쇠붙이였고 천장에는 메주가 걸려있었다.
뒷마당에는 몸통의 두께가 내 양팔을 힘껏 벌려도 손끝이 서로 닿지 않는, 100년 된 은행나무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은행나무 옆에는 담뱃잎을 말리는 건조장이 있었고, (그때 당시에 사용하지 않는)
창고도 있었는데 그 창고에서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 나는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 할머니 옥비녀를 발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슨 보물 찾은 것처럼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기억.
할머니네 놀러 가면 그 뒷마당이 나와 동생에게는 놀이터였다. 마당에는 봉숭아 꽃잎이 빨갛게 물들어 부끄러운 듯 얼굴을 수줍게 내밀고 있었고,
집 밖을 나서면 호박 꽃이 노랗게 피어 만개해있던, 정말 그야말로 정겨운 옛날 시골집이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일제 치하에 강제 징용당해 일본으로 끌려가 탄광 일을 하셨는데 해방 후 집으로 무사귀환한 역사의 산증인이셨다. 94세까지 장수하셨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1남 6녀를 낳고, 젊을때는 잔병치레로 고생하셨다는데 역시 92세까지 장수하셨다.
어렸을 적 장사하는 부모님은 일요일이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주기적으로 시골에 갔던 기억이 있다. 친가는 전북 익산이었는데 거기도 외가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찐 시골집이었다.
나는 그 주말이 좋았다. 어디 놀이동산을 가지 않아도 주말이면 으레 시골 가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 시골집에 재미있는 놀잇감이 많지 않아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특히 추석때 외할머니는 무조건 모싯잎 송편을 만드셨는데 그 송편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친가는 씻을 곳이 마땅치않아 명절에는 주방에서 따뜻하게 데운 물을 큰 대야에 담아 씻어야 했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만경강이 보이는 언덕이 있었고, 잘생긴 사촌 오빠와 네잎클로버를 찾으러 여기저기 걸어 다니던 소녀감성 풍부하던 그 시절이 아직도 내 어린 시절 추억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명절이면 폭죽놀이도 빼놓지 않고 했었더랬다. 두꺼비를 잡아 대바늘로 괴롭히던 사촌오빠들의 짖궂은 장난까지.
내가 이번에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왔는데 막상 와도 솔직히 할 게 없다. 날이 추워 감기약 먹고 있는 둘째 때문에 바깥나들이는 엄두가 안 나고, 집에서도 TV 보는 것 말고 하루를 채워가기가 버겁다.
우리 아이들은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놀러 왔던 기억을 무엇으로 추억할까?
나처럼 편한 마음은 느끼고 있을까?
둘째에게 물어보니 "재미있는게 너무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옛날 시골집에 우리 아이들이 가봤다면 또 어땠을까?
그나마 우리 엄마가 해준 정성 어린 집밥을 먹었던
그 기억은 잊지 않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할머니 안마의자 하루 종일 꾀 차고 안마했던 기억도.
손주들 온다고 뭘 먹여야 하나 고민하던 할머니 마음, 양쪽 어깨에 손주들 끼고 누워 같이 바둑 두며 데리고 나가 놀지 못해, 차마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한 할아버지 마음을 기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