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음의 무서움
2022년 에미상을 휩쓸어버린 작품이라고 해서 선택했는데 역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젠 승자 없는 영원한 싸움이 되어버린 *Woke vs **Awake 문제를 블랙코미디에 어찌 이리 잘 녹여냈는지 감탄이 나옵니다.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피로도가 한계치에 달한 지금, 《화이트 로투스》처럼 대놓고 PC 워크 컬처를 다루는 작품이 재미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결국 해답은 각본, 연출, 연기가 모두 훌륭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모던 패밀리’의 심화, 혹은 흑화 버전을 보는듯했습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재미입니다.
뭐든 재미 속에 녹여내면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는 무섭습니다.
그들은 수십 년간 ‘재미’라는 설탕 시럽에 어젠다를 녹여 전 세계인의 무의식에 주입해왔습니다.
《화이트 로투스》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 우리 안에 은근히 자리 잡은 잔상은 무엇일까요?
백인 상류층에 대한 반감? 소수자와 하층 노동민에 대한 연민?
이 무의식은 다른 수많은 콘텐츠에서 중첩되고 증폭됩니다.
《화이트 로투스》 시즌 1에 등장하는 주요 투숙객인 싱글 여성, 신혼부부, 가족 단위 여행자 중 친구를 따라온 폴라를 빼곤 모두가 백인 상류층입니다.
그들은 각각 문제를 가지고 리조트에 도착했지만 결국 서로의 갈등과 호텔 종사자들과의 트러블을 겪으며 문제의 답을 찾아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유색인종과 하층민 노동자와 성소수자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상처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화이트 로투스》에 투숙한 백인 상류층의 눈에 띄는 악행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말투 하나, 손짓 하나까지도 코믹하게, 동시에 못됐고 철없고 멍청한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직원들을 직접적으로 괴롭히지도 않았지만, 괴롭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이트 로투스》는 영리합니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구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약자들이 어떻게 스스로 무너지는지를 조명합니다.
이 드라마는 이해나 화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갈등과 분열로 치달을 뿐입니다.
계급과 부의 고착화, 아메리칸드림의 허상 뒤에 남는 건 ‘지배계층의 조롱’과 ‘피지배계층의 분노’입니다.
가끔 대화는 시도되지만, 행동은 대화만큼 이해심 깊지도, 자비롭지도 않습니다.
1억짜리 팔찌를 도둑맞고도 덤덤한 니콜 부부는, 범인의 평소 성실함과 정직함을 듣고도 사정을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결국 상류층이 만든 자아도취용 가면일 뿐입니다.
《화이트 로투스》는 서로 동의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는 Agree To Disagree라는 태도 속에서
‘존중’보다는 ‘단절’을 택합니다.
그리고 단지 ‘보여주기만’ 하는 방식으로도, 그 책임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화이트 로투스》는 유머스럽고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마치 흡연자 앞에 폭탄으로 타들어가는 심지가 놓인 것처럼 위태로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 Woke : 인종적 편견과 차별에 대해 깨어있다는 의미로 주로 미국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으로 흑인들의 사투리에서 파생되었다.
** Awake : Woke에 반대하는 의미로 깨어있으되 진보 성향에 반대하는 의미로 ‘awake, not woke’라는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