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야말로 공포다
2017년 일본 원작 소설에, 2018년 현지에서 먼저 영화화된 작품... 인 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좀 더 재미를 느끼고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추후에도 원작소설이나 일본판 영화를 볼 생각은 없는 고로, 순수하게 넷플릭스 한국판 영화만을 보고 느낀 점들을 나열해보고자 합니다.
작가(예술가)들은 늘 시대를 많이 앞서갑니다.
이는, 비단 기술의 진보를 표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문화현상이나 도덕적 딜레마 같은 정신의 변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인터넷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지금과 같은 온라인 사용경험의 부작용에 관한 작품들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대중들에게 새로운 발상의 경험이라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잘 쳐준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경고’ 이상이 되진 못한다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은 ‘신선한 충격’ 정도로 갈음하게 되죠.
여하튼, 그 덕에 작가들이 작품에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트렌디한 현상을 소재로 삼을 때는 ‘진부하다, 식상하다, 올드하다’등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지만, 그렇게 앞서간 작품들이 던지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경고에는 아무래도 그 시간대의 특성상 ‘확인할 수 없다’ 에서 오는 현실성의 결여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부분을 세밀하게 채워줄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저에게 있어 참신하지도 혹은 스릴러라는 장르적 긴장감이나 미스터리적 궁금증을 크게 유발하지도 못했지만,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섬찟한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굳이 살인이라는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더라도, 실제로 일상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흔한 실수 중에 하나로 인생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화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원작소설이든 영화든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많은 부분에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1995년작 영화 브레드피트, 모건프리먼 주연의 스릴러 ‘세븐(seven)’을 오마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라스트 클라이맥스 권총 씬은 의도적으로 그대로 장면을 가져다 쓰기도 했고, 인물 설정도 많은 부분 참고한 듯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오마주라고 한다면 바로 영화 세븐의 살인 근거인 전통적인 7대 죄악에, 현대적인 8번째 죄악으로 ‘무관심’을 추가한 점입니다.
24시간 안에 한 명이라도 연락이 온다면 살려주지.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있을 때나 좀 잘해주지 그랬어.
(범인)
아무 동기도 없는 단순 사이코패스 범죄인 것 같지만, 사실상 범인은 실체가 없는 죄악에 대한 심판의 비유적인 인물이자, 살해당한 피해자 모두의 비유이며, 그러한 차가운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데 참여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범인은 출생신고 미등록자로…
(뉴스앵커)
자칫 삼성핸드폰 디스작품으로 오해할만한 소지가 있습니다.
물론 다른 안드로이드 OS 스마트기기도 있지만, 안드로이드 대장폰은 삼성폰이고 한국영화니까 더더욱 그런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둔 건지(아마도 그럴 것으로 추측되지만) 디테일을 일정 부분 포기하면서까지 스마트폰 제조사가 표시되지 않게 처리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이폰을 해킹폰에서 제외시킨 것은 또 디테일을 살린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만일 크게 히트한다면 가장 큰 수혜는 아이폰에게 돌아갈 것 같습니다.
심한 경우 안드로이드폰 제조사들에게 고소를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범인역의 임시완의 연기가 가장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안구정화측면에서 그를 보는 즐거움이 만족스럽다는 게 함정일까요?
임시완 씨가 최선을 다 한 연기였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의 느낌은 받았으나, 이런 캐릭터는 뭔가 천재적인 연기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몰입을 이끌어내기 힘들 만큼 연기가 어려운 캐릭터가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클리셰의 반복이 긴장의 끈을 놓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영화를 어느 정도 보신 분이면 어렵지 않게 다음 장면을 예측하거나 반전을 맞추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 번째는, 각본의 아쉬움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영화 세븐의 오마주에 관련된 부분과 연결해서 말해보자면 뭔가 전체적으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세븐’처럼 냉소적인 톤을 중심으로 가지고 가고자 한 것 같기도 한데, 거기에 가족의 사랑이나 우정 같은 밝은 톤의 배합 비율이 적절하지 못해서, 뭔가 기름과 물처럼 사건과 캐릭터의 감정이 잘 섞여 들어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쉽다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 엉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부분들이 조금만 더 채워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정도 질량의 아쉬움이랄까요?
온라인과 그로 야기되는 관계적 가식과, 무관심이 가져오는 ‘휴머니즘의 상실’ 같은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스마트폰을 함부로 놔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스마트폰은 곧 개인정보와 동의어로 봐도 무방하기에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것과 동일한 뜻이기도 합니다.
주식투자자가의 아이러니 중 하나는, 만 원짜리 상품을 사면서는 인터넷마켓은 물론 요즘은 당근마켓까지 가성비를 꼼꼼하게 따지면서, 수백만 원짜리 주식은 투자할 회사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다루는 태도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수 있습니다.
기기만 따져도 고가품인 데다가, 그 안에 있는 금융정보나 기타 타인의 개인정보까지 합하면 분실할 경우 수백 수천만 원의 피해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개인 사생활침해로 인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급격한 삶의 질 저하위험이 있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주요 자산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그 중요도에 비해 함부로 술자리나 여기저기 놓고 다니는 경우가 빈번한 물건 중에 하나죠.
영화는 이에 대한 경고를 극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중요한 핸드폰을 잃어버리냐고..
(범인)
그런 점에서 위에 언급한 8번째 죄악 ‘무관심’에 이어 현대인에게 주어직 9번째 죄악을 ‘소흘함’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극 중에 살해당한 인물이 총 9명이기도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야말로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으며.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는데요.
그것은 바로 ‘잘생긴 것들은 믿지 말라’ 는 겁니다.
그들은 수려한 외모로 사람을 홀려서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방어하기가 거의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영화에서도 주인공 천우희는 사실상 범인인 임시완의 외모에 홀려 찐친을 버리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글쎄 안경 벗고 머리 좀 다듬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천우희)
그렇게 한번 흐려진 판단력으로 그들이 주입하는 플러팅 관련 언어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큰 상처를 입기 전까지는 스스로 헤어 나오기 또한 어렵습니다.
하여간 잘생긴 것들은 일단 상대 안 하는 게 좋지만 부득이하게 상대하게 되더라도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