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J가 던진 비수
광고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입소문이라는 것을 믿어라.
<본문>
저자의 말처럼 강력한 그 입소문을 타고 정식 출판이 이루어진, 최소 자산 1,000억 원대로 검증된 진짜 부자가 들려주는 ‘부자가 되는 비법서’다.
서울대 김병언 교수의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높은 물질(만능) 주의 지수를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출간과 동시에 각존 온 오프 서점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저자가 20년 전부터 언론사나 자신의 이름을 건 카페에 써왔던 짧은 글들을 모으고 보충해서 나온 정식 편집본으로, 꽤 두꺼운 편이라 다 읽는데 며칠이 소요되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철저하게 돈(수익)을 기준으로 한 행동양식이나 멘탈 관리에 대한 다각적 조언이다.
주로 직설적이면서도 비교적 거친 문체를 사용하여 ‘팩트 폭행‘과 같은 정신적 회초리를 가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저자가 의도한 것이며, 한대 처맞기 전까지는 깨어나기 힘든 인간의 원초적 관성을 깨우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중간에 던져버리지 않고 다 읽었다면, 내 글이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차갑고, 어떤 독자에게는 귀를 막고 피하고 싶어 할 정도로 몰상식하고 듣기 싫은 말들의 연속임을 알 것이다.
<본문>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어쩌면 이 책을 통해서 가장 발견하고 싶지 않은 정보 중의 하나인,
‘자수성가로 부자가 되는 길에는 왕도가 없다’ 정도가 될 것이다.
즉 부자가 되는 비법서라는 표현에서 기대하는 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책의 주 타깃층은 주로 그런 인내의 과정이 비교적 시간적으로 용이한 2~30대 젊은 층에 맞춰져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의 내용이 MZ, Gen_Z 세대가 꼰대 마인드라며 비웃을, 시대에 뒤떨어질 법한 충고와 지적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라떼는 말이야’식 글이 현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입소문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화자가 1,000억 원대 진짜 부자라는 것이 저자를 꼰대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한 가장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한때 유행처럼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돈씀씀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온라인 우스갯 짤들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아마도 젊은 세대들이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위로받던 ‘포퓰리즘’이 주는 애매모호하고 감정적인 메시지에 지쳐버렸거나, 뭔가 경험적으로 모순점을 발견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요즘은 이런 현대적인 시대정신에 지친 반감이 불러오는 반대급부의 형성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하면 할수록 밸런스가 무너진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 아닐까?
그런 뿌연 허상의 안개에 가려진 실체를 보고자 하는 호기심과 욕망, 혹은 용기로 내디딘 독서의 발걸음은,
저자의 안내에 따라, 전쟁 영화에서 보는 미화된 휴머니즘을 제거하고, 온갖 잔인한 살육과 강간이 난무하는 생존게임(머니게임)의 처절한 전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중 몇몇은 그곳에서 도망쳐, 다시 미디어가 뿌려대는 몽롱한 메시지를 가장한 마케팅 속으로 숨을 것이고,(나 돌아갈래~!)
몇몇은 전투에서 죽을 것이며,(아몰랑)
몇몇은 살아남아, 이제는 철저히 파괴된 그곳에 깃발을 세우고, 자신이 소유할 화려하고 높은 빌딩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인생책 발견)
장담하건대 당신이 재미있는 것만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당신의 삶 자체가 조만간 재미 없어질 것이다.
<본문>
책 내용으로 봐서 저자는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사고에 기반한 삶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로 보인다. 보통 이런 경우 사이코패스 성향이 짙은 것으로 아는데, 실제로 극단적인 부자나 대기업 경영자의 경우 상당 부분 사이코패스 뇌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을 기독교적 다원주의론 자라고 밝히고 있지만, 기독교와 다원주의는 사실상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므로, 그냥 자신을 표현하기에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표현을 쓴 것 같다.
기독교가 가지는 보편적 도덕성과 다원주의의 상대성을 적절하게 섞으면, 마치 비교적 윤리적이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저자의 강한 나르시시즘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이 자살을 시도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나르시시즘이 강할수록 그것이 충족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형태가 더 극단적일 수도 있다.
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몇 부분에서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른 것을 고백하기도 하는데, 후회는 있지만 고해성사 느낌의 반성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 후회도 대부분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불법들은 상황에 따른 독자의 이해를 받을만한 수준의 것들로만 구성된다.
“노동자와 농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권영길 후보가 외칠 때는
“나는 저 양반이 당선되면 이민을 가겠다”라고 가족과 친구들, 직원들에게까지 말하곤 했다. 진심이다.
<본문>
이러한 발언으로 봐서는, 나라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간간이 자신의 사고나 정치 성향이 중립적임을 나타내는 것에 문장들을 할애하는데 그에 관하여는 좀 집착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내용이나 문체가 전형적인 보수적 기득권으로 비칠 수 있기에 세대적인 이질감을 좀 좁혀보고자 하는 의도일 수도 있겠다.
유명 래퍼 에미넴 음악을 몇 번 언급하는 것으로 랩이라는 비교적 젊은이들이 소화하는 음악 장르를 통해 신세대적인 분야의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에미넴이 72년생이라, 장르적 느낌 빼고는 큰 공감대 형성이 용이하지만은 않다. 트래비스 스캇까지는 와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전체적인 내용을 좀 더 분석해 보자면, 시대는 변했지만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강조된다.
90년대든, 2000년대든, 지금이든, 성공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지능과 노력‘ 이 두 가지 바운더리에서 한치의 움직임도 없다는 것이고, 인생은 재능의 게임이 아니라 인내의 게임인 것에도 오류가 없다는 이야기다.
즉 금수저 물고 태어난 거 아니면, 미친듯이, 죽을만큼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끝없이 노력하라는 이야기이며,
그에 따른 보상은 결코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는 원론적 원칙을 상기시킨다.
물론, 그 노력의 평가는 보상에 따라 결정된다. 미래에 주어진 보상이 그간의 노력의 질과 양을 측정해 준다는 것.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몇몇 실무적인 조언 빼고는 고리타분함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에는 다음 4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1) 각종 미디어와 SNS의 부작용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높아 거의 최 정점에 다다른 돈에 대한 열망과,
2)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대적인 니즈에 부합하고,
3) 실제 자수성가한 극 상위권 부자라는 진정성이 있으며,
4) 무엇보다 반감을 일으킬 만큼 직설적이고, 어떻게 보면 폭력적이기까지 하면서도 순식간에 읽히는 가독성 높은 문체와 에피소드를 흥미 있게 구성하는 글재주가 결합하여,
읽으면서 재미있고 기분 나쁘고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며 납득과 반감이 공존하는,
사람을 들었다 놨다 가지고 노는 솜씨가 여간 뛰어난 게 아닌데?
여하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자가 ‘글을 통해 내뿜는 강렬한 카리스마’ 때문이라고 요약해 볼 수 있겠다.
특히, 게으름에 대한 전폭적인 조롱과 멸시가 돋보인다.
언젠가 혐오금지법이 소급 적용으로 통과된다면 상당한 소송에 휘말릴 것으로 보이며, 부자증세에 환장한 포퓰리즘 사회주의 정부가 자리 잡을 경우 상당한 재산을 납부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력이 남다른 편이라 이미 낌새가 보인다면 한국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예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2023년 출판이긴 하지만 원고의 수정 보완 작업이 최종 2022년까지라서 급작스럽게 글로벌을 강타한 챗 GPT를 필두로 한 AI 돌풍에 대한 생각과 통찰력을 듣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
과연 저자가 거의 피 토하듯 제시하는 일 잘하는 방법이, 그보다 수천 배 부자들과 학자들이 예측한 판이 바뀐 세상에서도 여전히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AI와의 경쟁이 일하는 방식과 돈 버는 방식을 완전히 뒤바꾸고, 특히 화이트칼라의 몰락을 불러올 만큼 인간보다 수백 배 뛰어난 생산성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은, 저자의 예측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저자가 강하게 강조한 필수 스킬 중 하나인 엑셀 능력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 제한적으로 도입된 GPT 기반 MS 오피스 코파일럿만 보더라도, 앞으로 이 분야는 AI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스킬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저자가 극도로 부정적으로 본 보편적 기본소득제 역시 강력한 예측에 따르면 현실화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오히려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역설적으로는 그가 경계한 ‘무기 없이 전장에 나서는’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저자가 출판의 목적으로 내세운 ‘길 잃은 젊은이들을 깨우쳐 미래의 부자로 이끄는 핵심 지침’들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과거 회고에 머무르며 결국 ‘라떼는’식 충고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문득, 궁금한 것은 저자와 같이 극단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보유한 압도적인 어드벤티지를 보통 사람도 가질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성공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 두 가지인 지능과 노력은 사실상 둘 다 재능의 범주에 속하는 건 아닐까?
흔히 들을 수 있는 ‘나도 처음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로 시작하거나 ‘내가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로 끝나는 말들은, 실상은 책을 팔기 위한 포장용 멘트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너무 거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 덧붙이는 일종의 예의일 뿐이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거기다 인구수의 증감에 상관없이 시대를 막론하고 부자의 비율은 항상 일정하다고 하지 않던가.
무엇이 됐든, 실패보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을 더 후회하게 된다는 건 경험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그리고 책의 많은 내용 역시, 적어도 지금까지의 시대 흐름에서는 그런 경험적 진실에 부합해왔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 글 제목에 사용한 MBTI 성향은 책을 읽고 내가 나름대로 예상한 분류일 뿐 확인된 사항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