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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드북

[영화] ‘미션 임파서블 8 : 파이널 레코닝’

지금 엔티티가 문제가 아니다

by 스투키

실로 오랜만에 극장을 다녀왔습니다.

톰 형은 못 참죠.

용산 CGV 반반 콤보는 여전히 명불허전이었습니다만, 팝콘에서 몇몇 딱딱한 알갱이가 나오는 것 또한 아직도 그대로여서, 잘못 씹다간 치아를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했습니다.


영화에 대해 솔직한 느낌을 적어보자면, 시리즈 중에서 재미는 가장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뭔가 너무 힘을 줘서 경직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액션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흔히 나타나는,

규모는 커지지만 재미는 오히려 줄어드는 고질적인 현상을 그대로 답습한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합니다.

관객들은 이제 비밀 스파이 조직 ‘IMF’의 이단아 ‘에단 헌트(톰 크루즈)’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이 다른 영화보다도 재미가 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IMAX 관에서 관람했다면, 그 평가는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메시지 전달력 면에서도 크게 설득력은 없어 보였습니다.

물론,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에서 그것을 크게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톰 형이 몰아붙이는 거대한 액션들은 너무나도 인간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공감을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다.’라기보단 ‘에단 헌트만 할 수 있다.’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본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톰 크루즈라는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또 30년간 이어져 온 시리즈의 최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극장 상영 전에 톰 크루즈의 짧은 인사 영상을 먼저 틀어준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충분히 납득이 갔습니다.

거기다 통신사 무료 티켓으로 봤으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 8 : 파이널 레코닝>은 전작 <미션 임파서블 7 : 데드 레코닝>의 직접적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자, 그동안 앤솔로지 형식의 독립적인 서사를 보여주었던 기존의 시리즈 모두를 이어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로 치면 한 시즌을 마무리 짓는 최종회에 가까운 작품이라 시리즈를 봐오신 분들이라면, 재미를 떠나 기꺼이 극장에서 표를 끊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주의 : 이후 감상에는 보시는 분에 따라 스포로 보일 수 있는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영화 속의 ‘엔티티’같은 존재가 발현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현재 AI의 발전 속도는 DC 히어로 ‘플래시’만큼이나 빠르게 내달리고 있습니다.

<터미네이터>시리즈의 ‘스카이넷’이나 <공각기동대>의 ‘인형사’, <매트릭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의 신)’과 같은 이런 신적인 AI 존재들은 왜 하나같이 인류와 적대적인 관계를 선택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마음’을 모방하기 때문이라고 전 생각 합니다.

아니, 사실 전 AI가 자아를 갖게 된다는 ‘특이점’이론을 믿지 않기에 그런 생각 자체가 모순일 수 있습니다.

제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AI에게 파괴적 자아를 부여하는 것은, 그 뒤에서 AI에게 특이점이 발현된 척 조장하는 인간일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AI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엔티티’를 손에 넣으려는 세계 각국과, 빌런 ‘가브리엘’의 노력을 막으려는 ‘에단 헌트’(톰 크루즈)의 필사의 노력은 그를 신(神) 적인 존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에서 올라오며,

얼굴도 모르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을 위해,

엔티티 열쇠(십자가 모양)를 지고,

목숨을 바쳤으며,

죽었다가 살아났고(부활),

엔티티(신. 神. 성령)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쯤 되면 그가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영지주의적 사상을 담은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다음 편이 나온다면 - 전 톰 크루즈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면 분명히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 이제 남은 것은 ‘자연의 재앙’에 맞서는 것입니다.

8편으로 신(神) 적인 존재로 거듭났다면, 이젠 유일한 신(神)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시간 50분에 달하는 영화 한 편을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그 시간에 숏폼을 천 개도 넘게 넘겨보는 내 모습과 대비시켜 보았습니다.

이젠 쳇 GPT까지 가세해, 잠잘 때를 빼고 이렇게 오랜 시간 스마트폰을 떼어놓은 순간이 최근에 있었을까? 할 정도로 점점 더 사용시간이 늘어가는 저를 보면서,

‘이게 엔티티고 자시고 가 문제가 아니다.

난 이미 AI와 알고리즘과 노예가 되었는데 뭘 미래를 이야기하고 앉았냐. ’라고 스스로를 책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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