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이 나에게 기적으로 다가온 이유
저는 독서가 취미는 아닙니다.
책이라곤 정말 결심을 해야 한 권 읽을까 하는 정도의 어떻게 보면 문자 공포증 쪽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그런 저마저도 간혹가다가 독서를 하면서 남아 있는 책 두께가 점점 얇아지는 게 아쉬운 작품들이 있습니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그런 점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저에게 제목 그대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스토리 중심의 문화를 대할 때 사전에 작품의 정보를 최대한 모르기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단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 이름과 그의 작품 중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라는 정보만을 가지고 골랐습니다.
그리고 추리소설의 천재라는 작가의 정보에 대해서는 최근 읽은 <용의자 X의 헌신>을 통해 직접 확인 한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하여 저의 합리적인 선입견이 가리킨 방향은 ‘독자를 농락하며, 숨 막히는 긴장감을 가지고, 천재적인 범죄 트릭을 풀어가는 미스터리 추리소설’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의 추리는 정확히 맞았습니다.
다른것은 몰라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저를 완전히 농락했다는 점에서 말이죠.
전의 그런 선입견은, 도둑 삼총사가 한밤중에 허름한 잡화점에 숨어들었을 때 숨을 죽이며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만들었고,
편지 한 통이 저절로 잠화점 안으로 떨어졌을 때는 그만, 무서운 마음에 조명을 환하게 밝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살인은 없었습니다.
범죄는 있었지만 어설펐고, 감추기 위한 치밀한 트릭과 파멸의 전조는커녕 반성과 휴머니즘이 담긴 플롯만이 조명을 가득 채웠습니다.
제가 초반에 느꼈던 뻘쭘한 공포에 스스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그렇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를 농락한 그의 트릭은 바로 저에게 의도하지 않은 선입견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작가는 그저 본분을 다 해 새로운 다른 이야기를 열심히 썼을 뿐인데,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격입니다.
그래서 저에겐 이 책의 경험이 더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덮고나서,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에 또 한 번 감탄을 하게 됩니다.
과거와 미래의 연결이라는 소재는 스토리 매체에서 닳고 닳은 클리셰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앤솔로지 형식의 플롯 사이사이 이스터에그 들이 회수되면서 그 독립적인 이야기가 하나의 플롯으로 합쳐질 때의 짜릿함은, 그만큼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 작품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남들과 같은 재료를 다루는 그의 솜씨는 미슐랭 3스타 쉐프처럼 탁월했습니다.
마침 어제 극장에서 본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미션 임파서블 8>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대사가 떠오릅니다.
“그냥 도둑과 위대한 도둑의 차이가 뭐지?”
그건 이 순간 마치 “그냥 작가와 위대한 작가의 차이는 뭐지?” 하고 묻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동일합니다.
바로 “타이밍”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무려 13년 전에 집필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저라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휴머니즘에 동반되는 루즈함을 호기심으로 환기 시켜야 할 ‘타이밍’ 말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계속해서 긴장의 끈을 이어가야 하는 미스터리 추리소설 작가였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기에 이 책이 저에게는 13년 전 나미야 잡화점 우편함에 넣은 작가의 편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전 2025년에 잡화점에 숨어든 도둑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저 역시 책 속의 문장처럼 ‘외부 세계와 단절된 듯 공기가 출렁 흔들리는 것을 감지한’듯 등장인물 들의 편지를 궁금해하며 기다렸습니다.
저는 적어도 제 기억력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는 이제껏 한 번도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저 자신이 책 선물에 대한 감흥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특별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제가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첫 번째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듭니다.
그것은 또한, 저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 될 것입니다.
※ 아래에는 작품의 핵심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지 않으셨거나, 읽으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아래의 글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스토리 요약
어느 날 밤, 세 명의 청년 도둑이 도주 중에 우연히 폐업한 ‘나미야 잡화점’에 몸을 숨기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낡은 편지 한 통을 발견하게 되고, 그 편지는 과거 누군가가 진심을 담아 쓴 고민 상담 요청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 편지에 답장을 하자마자 곧바로 또 다른 편지가 도착한다는 점이다.
시간의 흐름이 뒤섞인 이 기묘한 통신은 밤새 이어지고, 청년들은 점차 그 ‘상담’에 빠져들며 진심으로 고민에 답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이 잡화점에 이끌리듯 오게 되었는지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작품은 이 청년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낸다.
음악을 꿈꾸는 청년,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는 딸, 스포츠에 인생을 건 유망주,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 등,
각 인물들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진심을 담은 질문을 적어 나미야 잡화점에 보낸다.
그리고 ‘나미야 씨’라는 이름으로 도착하는 답장은 그들의 선택에 큰 변화를 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이 결국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연결되며, 그것을 향해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작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시간의 간극, 인물 간의 인연, 선택의 결과가 맞물리면서 마지막에 다다르면 하나의 퍼즐처럼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