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대중을 조롱하는 법
<오징어 게임>은 워낙 유명한 시리즈라 수많은 리뷰와 해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자극적인 장면이나 표면적인 스토리에 집중할 뿐, 이 작품의 핵심 구조와 메시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소 두서없을 수 있지만, 제 나름대로 이 드라마의 숨은 의미들을 간력하게나마 정리해 보려 합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공격수는 한 발로 시작합니다.
중앙선을 넘으면 비로소 두 발로 걷게 되며,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게임판 반대편 끝에 도달하면 승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비수와의 격렬한 몸싸움을 통해 상황에 따라 게임판의 선을 넘으면 플레이어는 ‘아웃’이 되고 이를 ‘죽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게임판‘과‘룰’입니다.
플레이어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게임판 안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통해 경쟁하고,
그어진 선을 이탈한 자들은 ‘죽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오징어 게임>은 단순히 잔혹한 생존 게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게임을 만든 자들, 그 바깥에 존재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그들은 대중을 틀 안에 집어넣고 조종하고 조롱하며, 서로를 갉아먹고 죽이게 만듭니다.
그들은 대중들을 개 돼지로 바라보며 마치 개싸움을 벌여놓고 돈을 거는 사람들처럼 대중들을 기만합니다.
게임 참가자들은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극소수 엘리트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세뇌당하고 길들여진 대중,
즉 우리 모두가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입니다.
시청자 누구든지 0.01%의 극소수 엘리트가 아니라면 이 게임의 참가자 456명과 대원들 안 어딘가의 층위에 속해있다고 보면 됩니다.
<오징어 게임>은 세상 부(富)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쓸어 담는 극소수의 상류층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세뇌되어 놀아나고 있는 대중을 기만하고 조롱하는 드라마입니다.
혹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참가자들이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셨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들이 쳐놓은 기만의 덫에 또 한 번 걸려든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의 도형 로고는 오징어 게임의 틀을 단순화 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주의는 항상 숨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 세모
피라미드 계급 체계를 의미합니다.
<오징어 게임>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존재인 극소수의 글로벌 엘리트들이
피라미드 최 하단부에 위치한 대부분의 존재들인 대중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통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 네모
프레임을 의미합니다.
피라미드 최상단의 존재들은 네모난 화면인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에게 프레임을 씌워 세뇌시키고 정신을 조정합니다.
• 동그라미
눈동자 모양인 원은 곧 감시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대중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를 원하며 감시는 통제의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 정리
피라미드의 최상단의 존재들은 대중들을 노예로 생각하며 그러기에 자신들이 완벽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샹각합니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대중을 세뇌시키고 감시를 통해 통제합니다.
‘대중은 그저 그들의 노예일 뿐이다.’
이것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말하는 모든 것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드라마<오징어 게임>을 시청하신다면, 게임에 참가한 그 플레이어들이 사실은 바로 시청자들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징어 게임>이 얼마나 치밀하게 구성된 드라마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현실입니다.
주인공 성기훈은 이 게임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즉 ‘진실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진실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성기훈은 진실을 알고 시스템을 거부하고 체제에 반하는 인물입니다.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음모론자라고 낙인찍어 몰아붙이고 제거합니다.
엄청나게 암울한 드라마입니다.
대중은 아무리 발악해 봤자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위에 그들의 조롱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이제 이해할 것입니다.
왜 이 드라마가 이토록 성공한 것일까요?
그건 바로 이 드라마가 피라미드의 최 상단에 위치한, 미디어를 지배하는 그들의 시선을 너무나도 잘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오영일은 성기훈과의 대척점에 선 인물입니다.
그는 피라미드 상단에 붙어먹는 것. 즉 그들의 충실한 개가 되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입니다.
선과 악이란 모호한 것이며, 이기는 자가 곧 선이라는 물질주의적 진리를 철저하게 깨달은 자입니다.
<오징어 게임>속 게임들은 전부 미디어를 상징합니다.
온갖 알록달록한 색감들과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순수한 느낌의 시각적 이미지에 사람들은 현혹되지만,
대중들은 그것이 자신을 죽음까지 몰고 가도록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대중은 자신이 각종 미디어에 얼마나 세뇌되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100% 미디어에 의해 조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가장 소름 끼치는 지점은,
플레이어들이 자발적으로 이 게임에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탈출의 기회를 주어도 사람들은 ‘자유’가 아니라 ‘시스템’을 선택합니다.
이는 대중들을 향한 노골적이고도 기가 막힌 조롱입니다.
아무리 진실을 알려주고 기회를 줘도 대중들은 스스로 노예가 되길 원합니다.
시즌3에서 가장 충격적이였으며, 그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은 문제적 모자(母子) 살인 신(scen) 주요 인물입니다.
생판 남인 김준희를 살리기 위해 아들 박용식을 죽인 어머니 장금자가 결국 자살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이해를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오징어 게임 중 가장 중요한 장면중 하나 입니다.
대중들은 결국 그들이 짜 놓은 시스템 안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돈에 환장한 사람들의 진짜 모습입니다.
이것이 과장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최근 신문기사들을 읽어보시면 마음이 바뀌실 겁니다.
드라마는 그저 현실의 작은 모형일 뿐입니다.
현실은 이보다 더 해괴합니다.
<오징어 게임>은 진짜 미친 드라마입니다.
‘양쪽 갈라치기’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활용해 온 고전적인 분열 전략입니다.
양쪽을 갈라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그 틈을 타 양측 모두에서 이득을 취하는 방식입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그 이득이‘재미’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무기를 통한 싸움들을 일으키게 만듦으로써
군수산업을 지배하는 그들이 전쟁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실세들의 전략 구조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빨간색을 X, 파란색을 O로 고정시키는 방식은
의식 아래에 작용하는 서브리미널 기법의 일환입니다.
이를 통해 특정 정치적 어젠다나 이념을 무의식 속에 주입하려는 시도 역시 엿볼 수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가장 냉혹한 메시지는,
정작 최종 빌런인 피라미드 최상단의 그들은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의식하는 시청자가 별로 없습니다.
이 또한 소름 끼치는 연출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뒤에서 모든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려놓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영일 같은 자들에게로 말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엄청나게 암울한 드라마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대중의 희망을 아예 1도 남김없이 잘라버린 드라마입니다.
그냥 그들의 지배에 순응하면서 노예의 삶을 사는 것 말고는 죽음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드라마를 좀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오컬트(사타니즘) 상징주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그야말로 오컬트 범벅이기 때문입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만 적어보겠습니다.
• 최종 우승자인 아기 등번호는 김준희(조유리)의 번호를 물려받아 222(6)입니다.
6일간 6게임을 걸쳐 6이 우승합니다. = 666
• 아기 아빠인 이명기(임시완) 참가번호는 333(9)입니다 9는 거꾸로 하면 6입니다.
엄마 아빠 아기 모두 6. = 666
• 최종 게임은 높은 곳 즉 재단에서 행해지는 오컬트 재물 의식입니다.
사실 모든 게임이 인신 제사를 의미하지만 최종 게임은 666이 완성되는 제사입니다.
• 최후의 2인
최후에 남은 2인은 성기훈과 아기입니다.
성기훈의 참가번호는 456입니다.
이는 1~9까지 숫자 중 가운데에 해당합니다.
즉 성기훈은 세상의 기준. 진실. 정의를 의미합니다.
성기훈의 죽음은 이 모든 것이 죽고 아기의 참가번호인 222(6)만이 남아 666이 완성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최종 상금
결국 우승자 아기는 우승 상금 456억을 받습니다.
456은 성기훈의 참가번호이기도 합니다.
아기의 우승으로 완성된 666이 최종적으로 456(세상의 정의, 진실, 기준)을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단지 게임 속에 펼쳐지는 잔혹한 서든데스가 아닙니다.
이것은 너무도 정확하게 현실을 압축해 놓은 것입니다.
그들이 던져놓은 잡힐 것 같은 희망(456억) 앞에 서로를 죽이며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도, 진실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도 없이 그저 그들의 노예가 되어가는 대중을 향한 노골적인 조롱입니다.
이젠 아예 거의 대놓고 알려주고 숨어있던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도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을 만큼 대중들의 세뇌(노예화)가 완료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