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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드북

[영화]Netflix ‘굿뉴스’(2025)

한국 영화의 구원투수 등판

by 스투키
후기
이번엔 제대론데?

최근 한국 영화에 대한 암울한 시선을 번쩍 뜨이게 만든 그야말로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가 등장했습니다.

한국 영화 망작 테크 시그니처인 국뽕, PC(정치적 올바름)사상 주입, 감정 쥐어짜내기 그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오직 영화적 재미만으로 승부하는, 응당 그래야함에도 최근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나 혼자서 단언컨대 이 영화는 최고입니다.

중정 부장과 서고명
이게 변성현 감독 영화라고?

<길복순>의 그 변성현?

이런 걸 ‘퀀텀점프’라고 하나요.

이건 마치 2025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포스트 시리즈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던 LA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가,

챔피언십 4차전에 투수로 나와 6회 동안 무실점으로 막으며 10개의 탈삼진을 잡고, 타자로도 등장해 3개의 홈런을 날린 믿지 못할 장면 같습니다.

오타니
이게 실화라고?

실화라는 것도 놀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극적인 소재를 55년이 지난 이제서야 영화화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블랙코미디로 제대로 녹여낸 감독의 연출도 놀랍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영화 상황이나 소재로 볼 때, 또 극단적 반일, 반미, 국뽕으로 억지 눈물 쥐어짜내지 않은 것에 감사한 마음마저 스며듭니다.

1970년 비행기 납치 요도호 사건
연기력 뭐임?

블랙코미디 영화에서 무엇보다 연기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정말 답이 없는데, <굿뉴스>는 주연 조연, 한국 배우, 일본 배우 할 것 없이 하나가 된 연기력의 향연은 카타라시스 그 자체입니다.

설경구가 설경구 하고, 류승범이 류승범 한건 그렇다 치고 홍경 얘 뭐임?

변성현 감독하고 둘이 연기력 연출력의 극단적인 상승을 걸고 악마랑 피의 계약이라도 맺은 거임?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않고, 누군지도 몰랐던 이분

야마모토 나이루

‘야마모토 나이루’를 꼽을 것 같습니다.

어찌나 웃기던지…

이게 오마주고, 이게 레퍼런스다

짜깁기 표절과, 레퍼런스 오마주의 차이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웨더슨,

<빅쇼트>의 아담 맥케이가 생각날 정도로 노골적이지만 그것이 제대로 녹아들어 짜증은 걸러지고 유쾌함만 남는 것

따라쟁이가 아닌 재창조의 좋은 예 입니다.

다양한 분석 유발

좋은 영화는 다양한 분석을 동반합니다.

영화 자체가 은유의 방식이기도 하고, 야구에서 볼과 스트라이크의 경계인 보더라인을 자유자재로 공략하는 투수가 훌륭한 투수인 것처럼, 영화를 통해 대사와 장면에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냅니다.

관객들 각각의 경험과 배경지식에 의해 각자가 풀어내는 다양한 감상과 해석을 보는 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영화의 부차적이면서도 적지 않은 즐거움입니다.

<굿뉴스>는 그런 점에서 개봉 일주일이 안된 벌써부터 여러 다양한 리뷰와 장면 분석이 나올 만큼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감상
개략적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와 개그 코드에 대한 호불호에 의해 평가가 길릴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실제 있었건 비행기 납치 사건의 무게감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된 코믹함이 그 균형을 잘 맞추고 있기에,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고 영화 끝까지 몰고 가는 힘이 있었습니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극증 - 트루먼 셰이디)

영화<굿뉴스>는 달의 뒷면,

즉 보이지 않는 진실에 관한 이야기 이며,

달의 앞면,

즉 반쪽짜리 보이는 조작된 진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달의 앞면의 보여지는 진실에 관하여 극중 ‘아무개(설경구 扮)’는

1. 일어난 사실

2. 약간의 창의력

3. 믿으려는 의지

라는 조작의 3단계를 설명함으로써 구체화됩니다.

이는 정언유착(政言癒着)이라는 달의 뒷면에 감추어진 진실이 작동하는 빙식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화<굿뉴스>는 그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

‘대의를 위해’라는 합리화를 달고 달의 뒷면에서 버려지는 권력의 찌꺼기를 건져올려 사금(gold dust)을 발견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심층적
서고명

항공 관제사인 주인공 서고명(홍경 扮)은 높을 고(高) 이름 명(名)이라는 원래의 뜻과 달리 역설적으로 무명(無名)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고명’은 요리의 메인 디시를 장식하고 사라지는 데코일 뿐입니다.

서고명은 극 중 그런 고명과 같은 존재입니다.

고명은 보여주기 위해 필요하고 때론 맛을 더할 순 있지만 메인이 될 수는 없고 기억되지도 않습니다.

지단 고명

주인공 아무개(설경구 扮)는 극 중 화자(話者)의 역할을 하며 동시에 수많은 ‘서고명’과 같은 인물들과 그들이 품은 감추어진 진실 그 자체의 메타포 이기도 합니다.

그 아무개가 막판에 획득한 이름 ‘최고명(崔高名)’은 진실을 품고서 이름조차 모르고 사라져간 그 모두에 대한 리스펙이자 헌사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그 아무개의 또 다른 이름 ‘트루먼 셰이디’는 아무개의 주석이기도 합니다.

True-man-shady는 드러내지 못한 진실이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으며

말 그대로 달의 뒷면에서 일어나는 감추어진 진실에 대한 총체적 비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극 중에서 설경구의 연기는 홍경, 류승범에 비하면 존재감이 미흡할 정도로 그다지 눈이 띄지 않습니다.

설경구보다 오히려 그가 쓴 모자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개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야

그가 맡은 배역의 정체성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무명과 그림자 -을 연기 그 자체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존재감이 없을수록 훌륭한 연기의 역설을 보여주었습니다.

심연적

<굿뉴스>는 자칫 이념과 극단적 정치적 성향으로 뒤범벅될 수 있는 사건을 소재를 블랙코미디라는 방식으로 중화시키며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으로 관객에게 억지 공감이 아닌 관조적인 시선과 사유(思惟)거리를 제공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코미디라는 친근함을 통해 관객의 이해 안에 들어온 과장된 설정을 사용함으로 극단을 비틀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중립적 시선이라기보다는 그저 매우 교묘한 장치들이었습니다.

<굿뉴스>의 뛰어난 점은 특정한 메시지 전달 방식에 있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스며드는 방식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뛰어난 각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력 아래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극 중 이념에 대한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발언과 조롱들은 그 발언자의 수준 낮은 행동들에 의해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공산주의는 경계와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장난거리로 격하됩니다. 그리고 장난은 친근함을 유발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비난과 조롱은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반감이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재미있음과 유쾌함이라는 달의 앞면과 달리 그 반대편에 해당하는 무의식 속에는

멍청한 일본, 썩어빠진 당시 보수권력, 냉정한 자본주의, 다수에 억눌리는 불쌍하고 비참한 소수가 스며듭니다.

반면 정작 사건의 주체이자 문제였던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은 희석되고, 대신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은 공산주의자의 휴머니즘과 ‘장난감 총’이라는 잔망스러움이 남습니다.


이미 일어난 사실의 일부를 취하고, 약간의

창의력을 더해 전체를 가리고 메시지를 믿음직스럽게 가공하는 것은 위에 말한 극중 아무개가 설명한

1. 일어난 사실

2. 약간의 창의력

3. 믿으려는 (대중의) 의지

라는 조작의 3단계와 일치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에필로그

오랜만에 영화적 즐거움을 선사해 준 넷플릭스의<굿뉴스>가 이제는 제목처럼 한국 영화계의 ‘굿뉴스’가 됐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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