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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84’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GOD vs Ai

by 스투키

책의 저자 존 C. 레녹스는 저명한 수학자이자 리처드 도킨스, 피터 앳킨스 등 저명한 무신론의 기수들과 공개 토론을 통해 잘 알려진 기독교 변증가다.

그는 과학과 철학, 신학을 넘나드는 논증을 통해 유신론의 지적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옹호해 온 인물이므로,

그런 그가 인간이 만들어 낸 최첨단 문명인 ai 에게 신(GOD)의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은 전혀 놀랍지가 않다. 오히려 그는 이 시대야말로 자신이 믿고 있는 성경의 하나님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음이 틀림없다.

나는 하등의 부끄러움이나 거리낌 없이 유신론적으로, 그리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이 작업을 해 나갈 것이다.
(본문)

유신론이 어느새 잘못도 없이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동반해야 할 만큼 자격지심의 단계에 이르렀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저자의 이러한 선언은 그가 존경받는 학자 수준의 토론에서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의 탄탄한 지식체계를 갖춘 지성임을 감안하면,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책은 총 13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조적으로는 마치 성경의 구약과 신약처럼 뚜렷하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인 7개 챕터에서는 ai 기술 현황과, 발전 방향, 그리고 이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전망을 탐구한다. 반면 후반부 6개 챕터는 그것 들을 토대로 성경적인 관점으로 확대하여 기술을 해석하며 ai 가 궁극적으로 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음을 설파한다.


전반부에서 저자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최대한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학자와 저작을 인용하는 비교적 일반적인 방식을 택한다.

거기에 더해 저자는 자신의 논의를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자신의 주 특기라고 할 수 있는 토론식 반론 구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의견이 신앙적 확신이 아닌 논증적 접근이라는 근거를 마련한다.

그 대상의 주요 인물들은 <사피엔스><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다빈치 코드><오리진>의 저자 댄 브라운,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등과 같은 여러 무신론자, 혹은 유신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사상가들이다.

이런 흥미 있는 빌드업은 챕터 8의 제목 ‘창세기의 기록: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보듯이 성경적인 관점으로 해석되고 마지막 챕터까지 거침없이 내달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우회해서 나아갈 영광스러운 미래나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그의 신앙적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그 근거로 과거 역사로부터 행해진 인간을 신격화하거나 품종을 개량하는 시도가 얼마나 참혹한 결말을 맞이했는지 명확한 예시들을 제시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없애고 인간에 대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됐다.
(본문)

그리고 결국 ‘과학(ai)의 범주 안에서도 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하나님은 그 이상의 것을 인간에게 줄 수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는 끝내 학술로부터 ‘구원’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구원’이다.
(본문)

하지만 그렇게 도출해 낸 결과가 저자가 기대하는 독자층에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저자 스스로도 특정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책을 덮지 말아 달라고 당부할 만큼, 과학과 신학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있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스토리 기반이 아닌 이런 학술자료와 논증 중심의 저술 성격을 띤 글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대로 ‘DNA 정보의 불가사의함은 무신론자들에게만 역설’이라고 할지라도, 중반 이후 급작스러운 챕터 전환은 당혹스럽다. 그것은 마치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듯 책에서 기대하는 범위를 이탈해 듯 책의 정체성마저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는 분량의 한계에서 오는 저자의 극단적 처방이었을 수 있다. 혹은 저자의 욕심이 과했던 탓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서는 좀 더 점진적이고 세밀하게 접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상당 부분 나의 지능 탓이겠지만, 물 흐르듯 흘러가는 문체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마치 의식이 흐르는 데로 써 내려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구간들이 종종 책장을 되돌리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지나치게 분명한 나머지 그 결론을 향해 논의를 무리하게 끌고 가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면 ai 에 대한 담론에서 저자가 특히 논의 대상으로 삼고 싶어 하는 부분이 인간 업그레이드를 위한 트랜스휴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스스로. AGI(보편적 인공지능)과 트랜스 휴먼 분야를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해놓고도 AGI를 다루는 챕터 대부분을 트랜스 휴먼에 대한 담론으로 채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관점에서는 어떤 편견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ai의 양면성에 관한 담론에서

그것들이 명백한 사실들이라고 해도 특정 관점을 강화하기 위해 지나치게 어두운 면에 조명을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일어나게 되면, 책에 대한 신뢰도는 독자의 기대 기준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세계관에 따른 시선을 가지고 있기에 완전한 중립, 혹은 객관적 담론만을 제시할 순 없다. 그런 점에서 특정 부분에서 책을 덮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며 제시하는 이유는 매우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회의론자, 불가지론자, 혹은 문신론자 독자들이 이 지점에서 책을 덮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당신들에게 꼭 그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 역시 당신들이 쓴 글을 이해하려고 많은 시간을 보냈고, 부디 각자의 관점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본문)


이 주제(ai)에 대한 많은 무신론적인 문헌이 있고, 대중은 스스로 결정을 하기 위해 또 다른 관점에 대해서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문)


끝으로, 나는 기독교인이기에 그의 주장과 내용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가질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접근으로 남을 것이다.

관점의 차이를 넘어서기에는 아직 더 허물어야 할 벽들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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