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이냐?
그래, 좋다. 내가 셰익스피어,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작가들보다 더 유명해질 것이라고 하자.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톨스토이)
현타의 대마왕 톨스토이의 <고백록>을 읽고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런 대 문호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나는 잠깐 동안 책을 덮고 어린 시절의 해맑은 상상들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한껏 부풀어 오르던 상상의 풍선은 늘 그 끝에 필연적으로 찾아오고야 말 ‘죽음‘이라는 아주 조그마한 바늘 끝에서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게 결국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렇게 수도 없이 터지던 풍선은 자라나던 나의 뇌를 희뿌연 연기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라나면서 전 그런 의문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눈치가 꽤 빠른 편이었기에 이후에 어느 정도는 허무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세상에 적응했고, 그런 사상은 간혹 분위기에 맞게 유머러스하게 사용되는 것 이외에 별다른 확장을 이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특정한 시점이 되어 극심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 지점에서 나는 더 이상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도 그랬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귀족으로 태어나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대단한 명성과 부를 획득했고 주위로부터 찬사와 존경을 받으며, 사랑하는 가족을 거느린 시대가 낳은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신을 ‘자살‘로 몰고 갈 치명적인 공격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것은 전쟁도, 질병도, 가난도, 죽음도 아닌 단지 어린 시절 제가 생각했던 의문과 동질의 것이었습니다
나의 삶은 정지되었습니다.
내 마음에서 원하는 어떤 것이 있어도, 내가 그것을 이루든 못 이루든 그 결과는 동일하게 무의미할 것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본문)
톨스토이의 지성은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명백한 의문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지한 자들로 여기고, 그 의문을 인식했음에도 회피하는 자들을 가련하게 여겼습니다.
톨스토이는 그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논리적 해답인 ‘자살’이 틀렸기를 바라며 이성에 근거한 모든 학문과 치열한 싸움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모든 지식과 역사의 지혜를 통해 그가 알아낸 것이라곤 이미 알고 있던 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단지 왜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해와 설명을 가질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광활한 인생의 바다 위에 이성의 깃발을 매단 뗏목을 타고 표류하고 있었고,
이제 그는 주위를 맴돌던 커다란 식인상어가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것을 그저 보고 있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의 삶의 모든 것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성’의 깃발을 멀리 내던졌습니다.
그러자 상어는 그 깃발을 따라 사라졌습니다.
그는 이제 ‘이성에 기초하지 않은 지식’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었습니다.
그것은 거친 파도에 의해 심연에 삼켜질 것 같았던 뗏목에 잔잔한 바람을 불어주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 뗏목을 붙잡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대륙에 안착하였습니다.
톨스토이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까지의 치열한 과정을 읽어가면서, 어쩌면 난 비슷한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너무 쉽게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식의 얕음이 확실히 득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지혜의 대왕 솔로몬도 ‘지혜가 많으면 근심도 많나니, 지식을 늘리는 자는 슬픔을 늘리느니라.’고 했으니까요.
나는 “나의 삶 속에 시간과 공간과 인과관계를 초월한 어떤 의미가 존재하는가”라고 물어 놓고는, “시간과 공간과 인과관계 내에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오랜 시간의 힘들고 괴로운 숙고 후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런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수학에서 방정식을 세워서 풀어야 할 문제를 항등식으로 만들어 놓고 풀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본문)”
나는 톨스토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더구나 독서를 많이 힘들어하는 부류에 속한 사람이라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 두 편 조차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백록>을 읽으면서 시대를 초월한 어떤 위로 혹은 영적인 동질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한 그의 종교관이 저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지라도 또한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조금 생겼습니다.
내가 누군가와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을 때, 좀 더 내 생각에 대해 논리적인 체계를 갖추고 또 톨스토이라는 대 문호의 지성에 기대서 편견을 완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뭔가 인생의 현타가 심하게 온 지인들에게는 이 책을 권해보거나, 책의 분량이 비교적 적고(150쪽) 가격이 다른 책에 비해 저렴한 편이므로 선물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