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고 정제된 세계
한때는 멍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히죽거리며 쳐다보던 ‘숏폼’이라는 핫한 플랫폼의 한 입 짜리 콘텐츠의 시대가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콘텐츠 고갈로 인한 반복에 피로도가 누적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다 이젠 AI까지 더해져 잠깐의 신기함 뒤의 간간이 올라오는 짜증까지 더해졌습니다.
내가 선택할 수도 없이 보이는 이 강제적인 플랫폼에 노출 알고리즘을 타기 위해 갖가지 방법들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그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에서 생산해 내고 반복되는 의미 없는 영상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내 스스로가 점점 한심해지기 시작하는 자각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덕분에 이제 숏폼을 쳐다보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만, 중독을 탈출 한다는 게 그저 결심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최근 들어 느낀 또 한 가지는 온라인상의 글들이 아주 정갈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세련된 어휘들과 문장들로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런 구성과 문체들이 점점 비슷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적당한 톤, 적당한 무게, 적당한 표현, 적당한 감정, 마치 누군가 글에 보이지 않는 바운더리를 그려놓고 튀어나온 부분을 망치로 쳐서 누르고 칼로 깎아낸듯한 반듯한 글들을 점점 더 빈번하게 접하면서 인간적인 감정이 글로 전달되기보다 그 글들이 점점 기계적으로 정보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아마도 AI가 가져올 앞으로의 세상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온라인 글들이 점점 정보화 되어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챗GPT로 인해 정보글을 더 이상 온라인상에서 따로 검색해서 찾을 필요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같은 범주에서 진행되는 또 하나의 현상으로는 작성글을 넘어 댓글도 AI가 잠식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젠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이런 현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AI로 글을 쓰고 AI로 댓글을 달면서 많은 콘텐츠들이 그저 조회수를 늘리고 방문자 유입만을 목적으로 글을 생산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모습이 알고리즘으로 대체되며 온라인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들은 단지 온라인상의 비인간화를 확장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이 생겨나면서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사이버공간’이라는 명칭을 얻었는데 이젠 정말로 ‘사이버’라는 단어 원래의 어원처럼 인간적인 면을 ‘통제’하는 공간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나도 내가 작성한 글들을 간혹 챗 GPT에 문의해 조언을 얻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생성형 AI 프로그램들에게 조언을 얻을수록 내 글들이 한 방향으로, 즉 모든 글이 내가 의식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끌려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위에 말한 ‘적당히’에 가까운 것으로 세련미와 정갈함을 가장한 ‘통제’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내게 공포에 가까운 체험이자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이후 나는 AI야말로 어느 누구보다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AI는 감정이 없지만 그것을 만드는 인간의 의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사람들이 다시 인문학을 찾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런 현상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명 저와 같은 생각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문학을 찾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적인 면에 대한 그리움, 혹은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감히 예언해 보자면 앞으로는 사람들은 점점 더 인간적인 모습들을 그리워하고 찾게 될 것입니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콘텐츠들이 설령 ‘튜링 테스트’와 ‘불편한 골짜기’를 넘어선 결과물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천문학적인 자료들을 먹어치운 ‘기계학습’으로 뱉어낸 결과물들인 이상 하나의 교집합을 향해 수렴해 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인간 세상은 그 교집합을 넘어서고 튀어나온 다양하고도 고유한 개성과 상상이 공존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 형태로 경험하면서 다른 크기의 감정들을 교류하고 감동을 느끼면서 성장해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대로 가다가는 사람들이 ‘답장 너’ 같은 획일적으로 변모하는 온, 오프라인 세상에 점차적으로 환멸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제로 보이는 진정성 없는 고도로 정제되고 계산된 콘텐츠들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표출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래서 시대의 반작용으로 인간 본능으로의 회귀가 문화적, 사회적 현상으로 조용하지만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알고리즘을 무시하고 가장 인간적인 면을 이끌어내는 정성스러운 콘텐츠들과 글들을 애써서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정보를 얻기 위한 경로는 이미 생성형 AI 프로그램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통해서는 앞으로 정보 보다는 감정을 기대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똑같은 크기의 미소를 띠고 대하는 세상은 공허할 것입니다. 그 미소는 AI가 가장 잘 흉내 낼 수 있는 미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AI 시대는 이제 시작이지만 그 발전 속도를 일부 체험하면서 벌써부터 그에 대한 기대보다 불안이 증폭되는 지점으로 돌아섰습니다.
그 불안의 가장 큰 파이는 아무래도 AI로 대체되는대규모 일자리 감소 우려가 차지하고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은 AI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한때는 새로운 문물과 문명에 열광하고 구시대적인 것들을 낡고 하찮은 것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무조건 새롭고 빠른 것에 박수를 치기보다, 조금 느리고 어설프더라도 사람이 느껴지는 것들에 더 비중을 두고 살아 보고 싶어졌습니다.
더 이상 속도를 체감할 수조차 없음에도 더 빠른 것을 원하고, 새로운 것의 5%나 경험해 봤을지 모르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원했지만, 생각해 보면 난 이런 것을 원한적이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속도의 5G 6G도, 팝콘처럼 튀겨대는 15초짜리 영상들도,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언어와 민족들이 똑같은 콘텐츠를 복사해 내도록 지배하는 하나의 정신도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수익화를 위해 나의 뇌 신경이 반사적으로 작용하도록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물론 AI가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시니컬한 세상을 온전히 거부하고 살아갈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만큼 그것에 내 생각을 위탁하지는 않겠다는 정도의 작은 다짐을 해 봅니다.
이제는 의도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기술이 주는 정교한 시스템에 쉽게 도취되고 안도하며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더 이상 상상을 필요로 하지 않을 문명의 막다른 시대를 앞두고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진정한 진보는 바로 저항과 회귀 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