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색과 채도가 없고 명도의 차이만 있으며
주로 검정, 하양, 회색을 이르는 말.
길가의 사람들의 옷들은 주로 무채색이다.
그들의 옷과 그들의 마음속의 색깔은 다르겠지만
마음까지 무채색으로 물들 때면
우린 깊은 우울에 빠지곤 한다.
우울하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일이 풀리지 않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럴 때도 있지만
우울하다는 것은 마음 안에서
쨍한 채도를 나타내는 빛깔들이
서서히 옅어져서 다시 물들이기 힘들 때를 뜻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갑작스레 닥쳐오는 우울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우울과 스트레스, 힘듦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느 겨울날, 공원을 산책하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휑한 나무아래 벤치에 앉아 쉬었다.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를 볼 때면 쓸쓸하고, 왜인지 슬퍼 보인다는 생각밖에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옆에 앉아 함께 나무를 바라보던 한 친구가 말했다
민들레 같다고.
한겨울 추운 날 뼈만 남은 가지를 보며
봄에 피는 민들레를 떠 올려본 적은 없었다.
그리곤 감탄하며 다시 그 나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처음에 나무는 시리도록 추운 겨울은 견디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지만으로도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며 넘어지지 않고 버티는 모습이 마치
봄날 민들레 꽃이 지고
홀씨가 되어 날아갈 준비를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민들레는 꽃이 피고 난 후 꽃이 지면
줄기에 풀이 죽은 채로 축 늘어져 있다가
꽃 봉오리에 씨앗을 만든 후에
꽃이 피었던 때보다 더 꼿꼿이 일어서
홀씨들을 바람에 맡긴다고 한다
가끔씩 쓰러져있는 민들레들을 볼 때면
그저 생명을 다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 꽃들은 다시
또 다른 여정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람에 맡겨진 홀씨들은
적게는 수십 미터, 많게는 수킬로미터까지 날아가
씨앗을 땅에 뿌리고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
꽃이 피고 난 후에 씨앗을 만들고
뿌리기 위해 주저앉았다 다시 허리 세우는 민들레가,
우리 마음이 무채색일 때
색을 입힐 준비를 하는 것 같아서.
흰색의 홀씨에서 날아가 뿌리내린 씨앗이
시간 지나 노랗게 피는 그 과정이
회색빛깔이었던 우리 마음에
다시 다채로운 색들을 채우는 것 같아서.
우리의 힘든 순간과 우울도
저 멀리 날아가 결국은 색채를 만드는 홀씨처럼
날아가는 과정의 일부이지 않을까.
매일 무채색의 옷을 입고 다니며
멀리멀리 이동해서
결국 아름다운 빛깔을 만드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