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네 강아지가 강아지별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아무런 상황도 뭐도 몰랐던 지라
메시지를 보낼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쓰면서도 수십 번은 고민했다.
혹시 내 말이 되려 상처가 되면 어쩌지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고민하다 문자를 보낸 것 같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다는 것.
굉장히 중대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고 또 맞는 말이지만
나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별을 많이 겪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학생이지만 아직도 애착인형이 있다.
매일 코만 만지고 자는 바람에 코 쪽의 천이 거의 삭았다 할 정도지만 나는 그 인형을 무척 사랑한다.
얼마나 사랑하냐면
지금보다 더 어릴 땐 그 인형이 사라지는
악몽을 꾸기도 했기에.
때론 나의 버팀목이고,
때론 나의 고민 상담소이자,
때론 나의 안식처 이기도 하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어떤 무서운 일이 있어도 그 인형을 안고 있으면
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진다.
그런 인형이 사라진다면
그런 인형이 죽는다면(버려진다면)
나는 상상하지 못할 슬픔을 느낄 것 같다.
또한 애착인형뿐 아니라 내가 아끼던 책, 물건, 심지어 장소마저도 슬픔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생명이 있어야만 정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니까.
인간은 정을 나누고 또 받는 생명체로써 마음을 쏟았던 대상이 사라진다면 그 고통을 누가 감히 모두 짐작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타인의 슬픔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친구의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너의 강아지와의 추억이 담긴 바다에서
딱 며칠만 잠수하다가 나오라고.
그 깊고 푸른 바다에서
너의 친구와의 추억들과, 때론 미안했던 것들과,
네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사랑까지 모두 다 찬찬히 살피고 나오라고.
그리고 나선, 그 며칠 동안 친구와의 추억을 오래오래 슬퍼하고 느낀 뒤엔 천천히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자고.
그 어둡고 깊은 심해 속에선 빨리 나오는 게 더 위험하듯이 너도 너의 속도에 맞추어 올라오자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뿐이였다.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면서, 친구에게 말을 해주며 다시 한번 죽음과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상에서 그냥 흔하디 흔한 유튜브 영상 하나만 틀어도 죽음과 이별이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 죽음을 가벼이 보지 않고, 그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야겠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풀리지 않는 난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