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것
칼을 무서워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날카로운 물건을 무서워하는 건 당연한 것이겠지만, 유난히 싫어하게 된 건 내가 기억하는 한 고등학교 2학년부터였다.
바깥 누군가와 다툼이 일어난 가족 한 명이 칼을 들고 집 밖에 나갔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서웠다.
울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멍 때린 기억이 난다. 버스의 오른편에 앉았던 것 같다.
학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울음을 참았던 것 같기도 하다.
20년 미만의 인생 경험을 가진 자로서 이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했으면 좋았을까.
그냥 무섭고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군부대사건 사고 소식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했다.
그때부터였을까.
피해자의 가족이 될까 무서운 걱정과 함께 피의자의 가족이 될까 무서운 마음도 함께 자라기 시작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인상 깊게 본 것은 우연이 아니라 말하면, 내가 겪은 걸 너무 확대해석 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이스토리와 수학의 정석을 더 열심히 푸는 것 뿐이었다.
그래도 어느 순간 그 일이 잊히고, 관련된 일들이 잊히면 시크릿가든 같은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도 맛봤다.
대입 자기소개서라는 중요한 과제를 앞둔 덕분에 드라마에 대한 몰입감이 더 좋았으리라.
매일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고, 이 일로 인해 더 어둡게 침전한 게 아니라고 말하기는 힘든 정도.
딱 이 정도의 불행.
보통의 불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