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의 독특한 애정
아빠는 장장 6시간을 운전해서 나에게 온다. 나는 그런 아빠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말 좀 하고 와!"라고 윽박지르거나, 운전이라도 하지 말라고, 기차나 비행기 아니면 버스라도 타라고 말한다. 통이 큰 바지를 입어도 알 수 있다. 아빠의 다리는 아주 노쇠했다. 잔소리 하면 뭐 하나. "아빠는 이 차가 제일 편해."라고 말하는데. 하긴. 아빠는 여전히 아날로그니까.
나는 이제 아빠를 가끔 본다. 그래서 사이가 좋다. 어릴 땐 누구보다 가시 같던 사람이었는데, 종종 눈물을 훔치거나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연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답답하고 슬퍼진다. '슬프다.'고 정의하고 싶진 않은데, 그런 기분이 든다. 어쩌면 연민 같기도 하다. 나는 아빠를 미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만큼 아빠를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빠의 나약한 면모를 알지만 모르는 척, 본가에서 장장 6시간 거리로 도주하여 산다.
가족은 족쇠다. 예민하던 어린 시절엔 엄마와 아빠는 내가 바라는 부모상이 아니었다. 사실 부모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인간상은 세상에 없었다. 지독한 인간혐오자면서, 사람에게 자주 감동받았다. 강한 것보다 약한 것에 더 마음이 동했던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도저히 약할 수가 없어서 일찍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며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봤자 대학생이 되자마자였지만. 그렇다고 독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멀어진 뒤, 아빠에게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다.
나는 아빠의 가부장적인 면을 비판하면서도, 그의 울타리 안에서 꽃처럼 자랐다.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 사실 그만 한 행동은 아니니까. 그런데 나는 마음 한 편에서 '나 이런 식으로 살아도 되는 건가?' 했다. 당시 본가에서 대학교는 자차로 40분 정도 거리였고 버스로는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내가 아빠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라곤, 버스를 타고 가겠다는 말뿐이었다. 아빠가 힘들까 봐, 내가 조금 더 고생해 보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아빠는 동그란 눈을 뜨고 왜 그러냐고, 아쉬워했다. 이것은 나만 만족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