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포기는 무슨

나를 만든 좌절에 대하여

by 수선화

나는 국문학과를 전공했다. 지금도 학과 친구들을 만나면 1, 2학년 때를 자주 거론한다. 마음껏 대학 생활을 즐기던 시기였다. 한글날이면 시를 작성해서 제출했고 그것이 액자에 담겨 잔디밭에 전시되었던 일, 친구와 열정 가득한 새내기란 이름으로 화려한 폰트를 사용해 PPT를 만들어서 아무도 못 읽게 만들었던 일, MT를 갔는데 교수님 앞에서 토론을 해야 했던 일, 연습생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만큼 늦게까지 춤 연습을 했던 일, 체육대회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일, 학교 안에 있던 술집에서 공강이면 낮술을 했던 일 등. 지금은 하지 못할 일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나날이었다.

이런 나를 보며 다른 과 친구들은 말했다.

“그런 게 대학 생활이구나.”


친구들은, 자신이 꿈꾸던 대학 생활을 내가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과제가 많아, 늘 도서관 안에 들어가 있으며 두꺼운 전공 책 때문에 가방도 큰 백팩을 메고 다녀야 했으니까. 나는 과제가 많지 않았기에 공강이면 기숙사에서 자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었고 들고 다니던 가방도 손바닥만 했다.


3학년을 기점으로 대학 생활이 바뀌었다. 복수전공으로 통계학을 시작하던 때부터 조그맣던 가방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짐이 없던 내가 무거운 짐을 들기 시작한 거다.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은 기존에 오다니던 건물보다 멀어서 긴 시간 걸어야 했다. 수학을 놓은 지 오래였던 나는, 한 번도 수업 내용을 이해한 적이 없었다.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서 수능 특강 문제집을 사서 기본적인 것부터 공부해야 했다. 과제는 매 수업마다 있었고, 발표도 잦아서 재미를 쫓을 여유가 없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두 건물을 떠올리면 국문학과가 있는 인문대는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와 햇살 가득한 느낌, 통계학과가 있는 자연대는 삭막한 분위기에 그늘진 느낌이다. 분위기도 그렇지만, 시험의 방식 때문에 애를 먹었다. 국문과는 ‘문장으로 교수님을 설득하라’였다면, 통계학과는 ‘공식을 이용해서 정답을 가져와라’였다. 늘상 풀어오던 문제는 마땅한 정답이 없었는데, 이곳은 명확한 정답을 요구했다. 휴게실에서 과제였던 시 한 편을 프린트 하고 친구와 떠들던 나는 없고, 답답한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2시간이면 할 수 있던 과제가, 많은 시간을 들여도 끝내지 못할 때가 종종 생겼다. 과제를 하면서 식은땀이 나긴 처음이었다. 점점 친구와 약속을 잡지 않았다.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었다.


“이게 현실이구나”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되고 싶은 대로 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거다. 내 안일했던 사고가 깨지기 시작했다. 졸업하면 국문학과 같은 생활이 펼쳐지리라 생각했는데, 허상이었다. 내가 술집에서 친구들을 만나던 시간에 누군가는 홀로 도서관에 남았고, 꾸준히 노력하던 사람들은 발자취를 남기며 저만치 앞서 있었다.

겨우 4년 동안 두 가지 현실을 맛봤다. 지금의 짐을 짊어지지 않는 대신 미래의 후회는 그 사람의 몫이 되는 거다. 꾸준히 책임을 다했던 사람은 느릴지라도 명확한 곳을 향한다. 수업 진도에 적당히 잘 따라가는 통계학과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어디서부터 멈춰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매일 자책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나와 함께 통계 공부를 시작했던 동생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해 못 하니까’라며 수업에 집중하지 않던 나와 달리, 동생은 교수님의 말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옆자리에서 노력하는 동생을 보면서 나도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내가 통계학과를 포기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어렵다고 포기하는 순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나 믿음도 놓을 것 같았다. 이걸 포기하는 일은 단순히 ‘복수전공 포기’가 아니었다. 내가 나에게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부여하는 거였다.

잘하는 건 바라지 않고, 최소한 포기하진 말자고 생각했다. 일단 1년 만 버티자며 나를 다독였고, 해당 기간을 버티느라 지쳐서 1년의 휴학을 했다. 이후에 복학을 해서 다시금 통계를 시작했고 이전에 쌓은 기본기 덕분에 초반만큼 어렵지 않았다. 가끔은 A+을 받기도 했다.

2학기에는 취업을 하게 되어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복수전공을 취소했지만, 포기하고 싶을 땐 버텼기 때문에 나는 내가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덕분에 아무리 힘든 일도 잘 지나가고, 또 좋아지는구나를 몸소 경험했다. 잘할 수는 없어도, 할 수는 있구나 생각했고 일단 그렇게 시작하는 거란 깨달음을 얻었다. 이때 겪었던 어려움을 통해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때면 이 경험을 떠올렸고 버틸 용기가 생겼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잘하는 사람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힘들 때면 생각한다. 나는 당장 잘할 순 없어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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