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동생의 기분

홈플러스 인형 매대, '2번 인형'의 숙명

by 수선화

중학생이 되던 무렵,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발걸음은 보통보다 빨랐고, 곁눈질은 제법 바빴다. 귓구멍은 쫑긋 세우고 성난 토끼처럼 방황했다. 왜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중2병이 근원이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다.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나는 쌍둥이였다. 중학생의 방황은 숙명인 거다.

어떤 날은 이런 말을 들었다.


“얘는 머리카락이 길고, 얘는 더 짧네. 근데 곱슬이야.”


이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얘 코가 더 오뚝해. 얘는 얼굴이 동그래. 나는 둘 중 얘가 더 예쁘다.”

"에이, 얘가 훨씬 하얗고 예뻐."


사람들은 정도를 지나쳤다. 우리는 중앙에서 우는 듯, 웃는 듯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둘 중 칭찬을 들은 사람만 조금 더 웃는 표정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확실하게 웃는 얼굴은 아니었다.

우리의 방황은 매 순간 이어지는 ‘구분’이라는 명목의 평가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안부를 묻듯 평가가 흘러나왔다. 괜찮지 않은 말을 들어도 수습은 듣는 이의 몫이었다. 나는 홈플러스에 구비된 인형 매대에 올라앉은 잘 포장된 ‘인형 2번’이었다. 오늘은 옆자리의 1번이 많은 선택을 받았다.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그래, 내가 동그란 얼굴을 가졌으니 그렇게 말했을 뿐이겠지.”


나는 남몰래 나의 속을 다독였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예민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무던한 게 이기는 것이라고 믿었다. 화내는 자가 패배하는 것이라고. 너의 짧은 생각과 말은 나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받고 싶지 않은 관심을 받으면서 배움을 얻었다. 갖가지 다름은 인정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삼가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말이 갖는 힘을 안다. 나는 억양이 주는 메시지를 봤다. 적어도 “뭐 어때?”라며 제 혼자 시니컬하게 상처 주는 사람이 되진 않았다.

남은 보지 못했던 세상에서 살면서, 차마 겪지 않아도 될 환경에서 자라나면서 나의 시야는 넓어졌고 시선이 닿는 방향은 뚜렷해졌다. 단순하다.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는 거다. 쓸데없이 남을 울리려는 사람이 있거든, 그 앞의 사람에게 손수건을 건네주고 싶다. 비록 아는 사이가 아닐지라도.


그러니까 당신은 성난 토끼가 되지 않기를 염원하며 나는 오늘도 작은 출판사의 한편에 자리를 잡고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울고 웃는다. 아직 대면하지 않은 독자를 상상하며 당신에게 상처가 될 만한 글을 지우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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