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었다

'부산문학협회'는 역시 가치가 있었다.
아니 '제일'이었다.
'김영찬 은유시인"의 개인전이
지난 이천이십오 년 오월 십구일부터
오월 이십삼 일까지 열렸다.
오전 아홉 시 반부터 여섯 시 전까지 있어보니깐
꼭 유지해야 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약일천 오백 부에서 이천 부의 사월 개간지와
취재노트 각한부씩 배부를 맡아서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눈 마주치면서
적극적으로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방명록 빠진 곳에는 서명으로 꽉 채워나갔다.
무엇보다도 시화전을
왜? 해야만 하는지를 배웠다.
하루 종일 있어보니까
시인이라면 정말 자신의 시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가격대가 그리 높지 않다면,
한 끼쯤! 고급식당에서 '뷔페를 먹는다'라고 생각하면 시화전에 동참하는 것이 그렇게 버거운 것만은
아닐 줄로 믿어졌다.
은유시인의 시를 오신 손님들이 함께
감상하면서 많이 웃고 또 울었다.
부산의 여타 문학회들도 많지만,
부산문학협회를 설립한
오십 년 이상 한길로만
정진한 은유시인을 만난 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된다는 생각이 뇌리 속을 스쳤다.
진정한 글의 솜씨와 맵시로 노인과 바다를
국제문학(예) 도시의 메카 성지처럼
등극시킬 수 있는 배짱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갈매기의 꿈'을 심어줄 수 있는 학회로 여기가 '최적의 요충지'라고
어찌 아니 말을 할 수 있으랴!!!
시화전 때 만난 인연들이 고생한다고
커피음료와 먹거리를 사주어서
배고프지 않을 수 있었다.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로는
'시판매 하느냐?''도자기 얼마 하느냐?'
'시집책 꼭 좀 주시면 안 되겠느냐? '
'마음에 드는 시화'는
'폰카메라'에 담고 갔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큰 지장이 없다면
'단체전'과 '개인전'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강추한다.
현장에서 행사를 치러보니까
강원도와 서울, 양산, 그리고 울산 김해 등지에서
오신 손님이 '부산문학 개간지'(원래는 월간지)를 받아가려고
줄을 서는 모습에 마치 '문학팬'처럼 느껴졌다.
"번화가'라서 '외국인'들도 많이 지나갔다.
한국말 잘하는 '키다리 외국인'이 덕분에
시설팀에 의뢰했다면서 내게 고마워했다.
'더공간' 교통도 편리하고 왕래도 많은 곳을
먼저 알아내서 '김영찬 은유시인 겸 발행인'
"이것이 시화전이다."를 펼치고 귀감을 사주셔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립박수'를 쳤다.
시민들과 어우러지는 '시한마당'을
보면서 사라져서는 안 될 귀중한 '부산문학협회'임을
깨닫게 하였다.
'북콘서트'처럼 손님들에게 '오카리나'와 '우쿨렐레' 짤공연으로 '박수세례'와 '함성'을 들었다.
왠지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김영찬 은유시인의 시는 '솔직 담백함과
그리움'이 넘쳤다.
오일동안 약 이천 명 이상 다녀갔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었다.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에
우리 동네에서 맛있는 '자매김치칼국수'를 먹고,
'금쪽같은 후기'를 작성하게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