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켈러

어린 시절에 꼭 해야 될 일들이 존재한다.
시기를 앞당겨서 하는 일에는 찬사가 따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쳐서 하게 될 때 주변인들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를 응당 받게 되기 마련이다.
특히 예술을 고집할 때는 무모한 도전이라면서
돈도 안되는데 뭣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둥
지금 네가 피아노 칠 때인가? 라면서
나는 정말 전공자처럼 탄탄하게
공부하는 건데 아주 그냥 노는 것으로
착각을 할 때도 있다.
나는 반대급부가 많을수록 어허! 피아노의 도를
닦고 있으니까 "건드리지 마!"라고
으름장을 피우는 게 고작 방어태세였다.
나는 모전기설비공사에서
경리직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근무하는 동안 따뜻하게 잘 챙겨 주었다.
마지막까지 에티켓을 보여주고
게다가 황금색 그렌저 엑스지가 유행이던 시절
사장님의 사모님께서 자동차로 배 한 상자 들고 집 근처까지 바래다 주신 기억이 난다.
그 무렵, 로버트기요사키가 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스토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에스생명 보험 아주머니가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자주 들어와서는
결국 종신보험 계약 체결하고 게다가 나를 리쿠르팅까지 하였다.
나는 인기가 많았다.
어려서 그런지 나를 많이 띄워 주었다.
결국 개사를 하게 되어 녹음까지
만들어 리더십으로 팀을 이끈 경험이 떠오른다.
돈이 쏟아지는 ㅅㅅ으로 가요
돈다발이 넘치는 ㅅㅅ으로 가요
프로다운 에프씨를 느껴보세요
남녀노소들의 ㅅㅅ으로 가요
가족사랑으로 고객감동 고객 만족 오케이
영원한 일등에 묻힐 거예요
언제나 ㅅㅅ이 초일류에 도전하듯
여왕벌탄생이 기대되는 땡땡 지점
죽음에 대해 나는 늘 직시하면서
생각하는 로뎅처럼
생활해 왔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업무시간이 종료되고 집으로 가는 방향인 버스정류장 부근에 엄지피아노학원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산만덕에서 좋지 않은 기억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어 스르르 학원문을 열고
"누구 계시나요?"
"예, 어서 오세요"
인자하게 생긴 피아노 선생님이
상냥하게 앉으라고 말한 뒤
마실 것을 내어 왔다.
그간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하농부터 바이엘, 체르니, 전공자코스를
밟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중간에 뷔르크밀러는 아픈 가슴에
힐링이 되었다.
인벤션은 규칙적으로 손가락 번호대로
지키면서 쳐야 하는데 잘 안되었지만
한곡 가지고 떠듬떠듬 여러 번 연습한 끝에
성공했을 때 엄청난 희열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을만치 매료시켰다.
게다가 재즈피아노는 라디오방송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노래라서
귀에 익숙한 멜로디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학원의 규모는 크거나 세련되지
않았지만 성인레슨을 아주 진정성 있게
잘 가르쳐 주었다.
하얀 건반에서 검은건반 그리고
조표와 임시표 붙은 것을 마스터해 나가는
과정이 초보자인 내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는......"".
좋은 사람은 만남의 시간이 짧다고
그 누가 말을 했던가요!
하루는 학원장님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남편이 대전 카이스트 연구원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조만간 대전 유성구에 있는 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간다는 것이었다.
일 년 동안 잘 다녔던 학원을 처분하게
되었다는 청청벽력 같은 소식에
그간 피아노를 양손으로
잘 치기 위하여 애써온 생활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실은,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
친구의 만남도 웬만한 것은 일체 자제하였던 터였다.
엉덩이를 피아노 의자에 딱 붙이고
한번 앉았다 하면 집에 갈 생각을 안 했다.
보다 못한 원장님이 열쇠꾸러미를 내게
보여주면서 "정화 씨! 갈 때 잘 잠그고
가세요"라고 말하였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악보를 잘 보기 위해서
음표의 뜻을 알기 위해서
동공을 확대하듯 건반을 가로질렀다.
소위 이유 있는 잠수를 탄 끝에
일여 년 만에 양손을 드디어 쳤는데
이는 마치 천둥 번개를 껴안는 기분이요
내 생애 최고의 기쁨으로 다가왔었다.
그때부터 나는 탄력이 조금씩 붙었고
내게도 아름다운 무기쯤은 들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감을 되찾았다.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회식 있는 날 학원에 불러 모아
로미오와 줄리엣외 아들린을 위한 발라드 등 연주를 멋지게 들려주었다.
엄지 피아노 학원장님의 배려 속에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잠재된 예술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되었으며
바이올린까지 부전공으로 하게 되었다.
나는 피아노계의 헬렌켈러의 설리번 선생님이라고
감히 부를 수 있겠다.
헬렌켈러가 설리번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불가능도 가능할 수 있었던 것처럼!
피아노도 악보도 모르고 무지했던 까막눈 성인의
열손가락을 인정해 주고, 꿈과 희망을
저버리지 않도록 아름다운 소통과 나의
자작동요곡(정겨운 친구)도 칭찬해 주었다.
기억나는 것은
노래는 즐겨 부르지 않는데
피아노는 매우 도두라지게 잘 쳤다.
알파로 가슴속에서 매우 뜨겁게 살아 숨 쉬면서
아주 그리운 선생님으로 각인되어 있다.
대전 유성구에서 대전의 또 다른 구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끊긴다.
휴대폰번호도 바뀌었고 끝자리가 영일오구로
첫째 아들 두 살 무렵 민규를 떠올리면서
글은 사랑을 싣고이련가!!!
기적처럼 부디 민규외 두명 더 낳고
같은하늘아래 다른 곳에서
피아노 학원장 하고 있을
그녀와 상봉할 수 있기를
바래고 또 바래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