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날아라 거북선처럼

by totalmusicq

#날아라 거북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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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산발적으로 내리는

대체 연휴일(25년 5월 6일 화요일)이다.

푸른 벌판을 뛰었던 어린이날을 집에서

무작정 보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오래전부터 사전 약속이

되어 있던 유를 만나러 각종 군것질용을

챙겨 들고 미래의 마에스트로

세바스찬을 데리고 전철길에 올랐다.

우리 세바스찬 올해 만오 세이다.

아직 기저귀를 떼고 있는 중에 있어

개구쟁이 뽀로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아이였다.

한번 아이를 데리고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려면

핸들링하기까지 여러 차례

수차례 어르고 달래기를 반복하고 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치 보게 되었다.


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바스찬과 다니다 보면

아주 가끔은 흥미진진하게도

신기한 일이 어진다.

오늘 전철 안에서 배낭가방을 메고 들어온

올드 외국인(불란서) 남녀 한쌍이

부산 동구지역에서 탔다.

그중에 여성분이 세바스찬 옆에 앉았다.

세바스찬이 젤리와 과자 그리고 음료수를

먹을 때는 얌전하게 있다가

다 먹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전철 바깥을 본다고 옆에 있는 사람

불편하게 만들었기에

가방 안에 챙긴 간식 중에서

대요쿠르트 음료수를 꺼내어서 주었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얌전하게 굴었다.

물론 그것은 고작 마실 때뿐이었지만......."".


우리 말썽꾸러기 세바스찬이를 보니까

불란서에 두고 온 자녀들이 떠올랐는지

아니면 입막음용 간식거리를 주는 모습과

양 많은 요구르트가 마음에 걸렸는지

불란서 버전인 "푸른 하는 은하수"

손뼉과 손뼉을 부딪히기 게임을 세바스찬에게

권유하는 것이었다.

나는 흐뭇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여

"where do you come from?"

물어보니까

그녀는" I'm French"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꼬맹이 간식거리 일부인

가방에 든 대용량 새우깡을 보이면서

"Hey Saewookkang Korean Food Top

Would you like to eat it?"

그녀는 "I decline"!

손사래를 치면서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나는 눈빛으로 두 분의 입이 심심할 때

드시라고 한국의 정을 선물처럼

나누고 싶었다.

그런 따뜻한 나의 마음을 헤아린 걸까?


나는 발동이 걸리면 영감 덩어리가 별처럼 쏟아져

하염없이 쏟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틈을 파고들어

" I am a teacher, poet, and songwriter who teaches music ".

그녀와 텐파이브 손바닥을 맞대고

이번에는 내가 그녀에게 '싱글벙글 게임'을

제안하여 달리는 전철 안에서

한국의 싱글 랄랄라 벙글 싱글벙글해

놀이를 천천히

알려 주면서 같이 버전을 업그레이드

시켜 나갔다.

달리는 전철 안에서 중년의 외국인과 손뼉을 치면서

오 분동 안 게임을 즐긴 사람은

아마도 내가 최초이지 싶었다.

웃음을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는 것일 테니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목적지에 다 와가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물어볼 새가 없었다는 점을

꼽는다.


그녀는 전철좌석이 없어서 남편이랑 마주 보고 앉아 있었는데

우리 둘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빨리 가까워지는 모습이

신비로운 듯이 밝은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폰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다.

그녀의 아들이 누나의 반주에 맞추어

고풍적이면서 은근히 매혹적이게

첼로를 켜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내게

보여 주었다.


어머나! 나는 음악 예찬론을 그저

펼쳤을 뿐인데, 이국의 여인이

자신의 아이들도 악기를 다룬다고 내게

자랑하는 모습이 매우 친근하였다.

거기다가 성년이 된 딸도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 주어서

아주 좋았다.

왜냐하면,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곡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 노래는 모방송 '달려라 래시' 콜리견이

한 창 유행한 시절이 있었는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곡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리라!

마지막 연주 계이름을 보니까 내가 기타 동호회

'스웨이'에서 오카리나로 부른 적이

있는 노래였다.

"도도시라 솔미 도레미 파미레디도디레"

멜로디를 떠올린다.

그것이 성년 때 배우면

삼 개월을 못 버티고 그만두는데 반해

나는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남아서 연습했었으니까!


아참 나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계상코드로

소리 번역기처럼 들린다.

조금은 오버해서 베토벤처럼 들린다고

말할 때도 있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이 정석이고

내가 그 노래를 알면 다장조로는

얼마든지 악기야 덤벼할 정도로

자신 있게 연주한다.

다만 클래식 연주는 나보다 월등하게

연주를 잘하는 분들이 많으므로

프로들의 공연장을 찾아서

무대매너와 아름다운 스킬등을 공부하듯이

배운다.

익숙한 곡을 피아노 연주한 모습을 보니

음악은 전 세계인들의 공통어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외국인과 스스럼없이 설사 틀릴지라도

대범하게 회화를 나누는 편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It's a beautiful song.(music)"

이라고 얘기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 Oh, yeah! It's Finish"

라고 그녀가 미소 지으면서 화답했다.

나의 목적지보다 먼저 내리는지

두 분 다 배낭을 메고 일어섰다.

그녀는 세바스찬에게도 친근하게

잘 가라고 인사를 했고 나랑도

아이 컨텍트하면서

마지막 악수를 하고 "bye, bye"

서로 전철문 앞에서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는 고별을 하였다.

나는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좋은 인상을 심어주자라는

마인드가 늘 내재화 외재화 되어 있었다.

전쟁터에 나가면 총을 상시 준비하듯이

나는 휴대하기 좋은 악기는

가방에 쏙 넣고 다닌다.

중년의 외국인과 스스럼없이 상호작용을

했던 이유는 음악이 주는 파워라고

감히 말하겠다.

그렇게 우리도 그녀 덕분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면서 하단역 일 번 출구에

무사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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