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작곡하게 된 배경

"초등(국민) 학교 삼 학년 오반 개구쟁이들아
다들 무사히 잘 있는 거지?"
그해 방송부 리코더부에 나는 당당히 리더로 뽑혀서
"바위섬"을 다섯 명의 친구들과 불렀다.
이렇게 곡명을 '바위섬'이라고 정해진 이유는
교과서 곡이 아닌 가요를 부르는 모습을 본
학예부장이
마치 전구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낸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 선발되었다.
전교생들이 보는 텔레비전에 송출이 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과거의 '타임머신캡슐'을 열면,
난 늘 음악과 함께였음을 재발견할 수가 있음에
회상을 해본다.
나는 사실 아이큐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굼벵이도 부리는 재주를 타고난다.'는 말처럼
그저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헤아려 준다거나,
봉사와 공감, 경청과 배려등으로
직업군으로 따지자면
참모역할에 잘 어울린다고 자주 듣는 편이었다.
난 좋고 싫고 가 분명하다.
좋은 일은 밤을 잊은 그대가 되고
싫은 일은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가
되어서 얼어붙는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방에게 인정을 못 받을 바엔
내가 나 자신을 위로하면서 삶을 겨우 버텨낸
까닭이 아니었을까?
남들은 한 번만에 되는 것을 나는 열세 번을
해야 한 개를 거머쥘 수 있었으니까,
이는 움켜쥘수록 고통스럽기보다는
내려놓을수록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쪽에 포커싱을 맞추었으리라!
초등(국민) 학교 오 학년 오반 시절
삼 학년 때에도 같은 반이었던
예쁜 벗이 있었다.
친하게 지냈던 이유는 우리 엄마와 친구의 엄마가
같은 회사에 근무를 했었고, 게다가
집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기 때문에
단짝 친구가 될 조건에 충분하였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때로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아버지로 인하여
아가페 사랑을 지닌 마더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믿기 힘들겠지만,
먹고사는 일의 문제를 어린 나이에
참 고민을 할 때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이 오히려 약이 되어
어지간해서는 주눅 들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며, 어떠한 나락에 빠질지라도
헤쳐 나올 수 있는 근육이 자연스럽게
새싹처럼 돋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베스트프렌드로 친하게 잘 지내던 친구가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어여쁘다 보니까
반에서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어린 마음에 나하고만 잘 지냈으면 싶은데
나와 노는 시간을 함께 늘렸으면 하는데
영 내 뜻대로 되질 않았다.
결국 붉어졌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수업 시간에 아주 사소한 일로
그 친구와 한 학기 동안 절교선언을 한 것이다.
사실, 잘 지냈는데 단짝친구에게 한 급우가 등장하면서부터 사이에 금이 가고 깨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원흉으로
생각했고, 단짝 친구가 정작 내 마음도 몰라주고
그 아이한테 잘해주는 모습이 싫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일을 그때는 인격 형성이
될 되어서인지 절교라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내 곁으로 돌아올 줄 알고 무려 한 학기 동안을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중에도
말을 섞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아주 서먹서먹하게 보내고 있었다는......."".
나는 도저히 이건 아니다.
하루는 우리 집으로 공부도 잘하고
매우 영리하게 생긴 남 씨 성을 가진 벗을
불러서 놀러를 오게 했다.
"숙아! 내가 경이랑 매우 친한 거 알제?"
"그랬나?"
"응! 사실은 내가 그 친구와 절교선언을 한 바람에
후회막심을 하고 있다 아이가."
숙이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화해를 할 좋은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숙아! 실은 내가 '친구'라는 노래를
지었는데 한번 들어 보겠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응! 그래볼게!
정겨운 친구
정답게 놀던 친구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도 보고 싶어 나는 울었네
하늘의 흰구름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풀밭에 꽃송이 방실방실
웃어 주는데
네는 내 마음 모르고 어디로 가니
이렇게 노래를 지어서 숙이에게
들려주니까 숙이가 잘 지었다면서
"정화야! 노래 선물해 주면 되겠네. " 하면서
빙그레 웃어주었다.
"따르르르릉"
"여보세요? 거기 경이 있나요?"
"전대요 누구십니까?"
"경아! 내 정화다. 내가 미안해"
수화기를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먼저 사과를 했다.
"정화야! 나도 미안해 우리 집에 고구마 있는데
들고 갈까?"
"응! 그래주면 고맙고 삼분만에
뛰어 오너라 보고 싶다."
정겨운 친구 작곡과 고구마로 화해를 하였고
'절교'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추호라도 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눈치 안 보고 살기로 했다
O.S.T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잠든 시간 나는 조용히 깨어나는 시간~~~
일분일초 쪼개어 나누고자 했던
이젠 나만의 선물로 나눌까 해요
어려운 길 왜~ 걸어가냐고
쉬운 길 놔~두고 왜 돌아서 가냐고
목숨과도 바꿀 수 없을 소중한 그 가치로 내길 열어 나갔을 뿐이죠
후렴
그래요 난 이것저것 눈치 보느라
아름다운 일순간이 무너지는 현실이 이젠 죽기보다 싫어요
한 사람은 한 세상 삶을 포기하지 않았죠
그게 오늘날 나로 성장 시켜주었죠ㅡ오우오
One man lived in a world
(몇 날 며칠 밤새워 애써온 흔적들은 보다 나은 세상 향해)
유일무이 비추고 있죠
클라이맥스
인생이란 커다란 무대 속에서
더 이상 눈치 보고 살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눈치 보고 살 순 없어요
난 눈치 보고 살지 않기로 했죠
난 눈치 보고 살고 싶지 않아요
나는 눈치 안 보고 살기로 했다
예이예이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