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기 어렵다

엄지 피아노 음악 학원장이 대전 유성구로 부군의 직장을 따라서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는 바람에
또 다른 학원을 물색하였다.
ㅁㄹ초등학교 뒤편에 가정집이 딸린
ㅇㅈ음악학원을 선택했다.
"안녕하세요? 앞전에 '엄지피아노음악학원' 다니다가
이사를 간 바람에 추천으로 여기 오게 되었어요!
라고 말하자 "그랬군요 어디까지 배우셨나요?"
" 체르니 삼십 번 들어가다 말았어요"
일끝 마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와서
원장님께 레슨을 잘지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습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삼십 분 정도 레슨하고 나머지 시간을
충분히 남아서
연습할 시간이 제공되어야 하는데
'엄지음악학원'하고는 대조적 이게도
하교하고 쪼르르 달려오는 많은 학생들 때문에
학생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피아노 숫자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피아노 자리에서
양보 아닌 양보를 해주어야만 했었다.
"죄송해요! 아이들이 많은데 제가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학생들 없는 시간대는 언제인지요?"
" 오전대가 좀 나은데 직장인이라 쉽지가 않겠지요?"
하는 수 없이 추천받은 학원을 또 접어야만 했었다.
ㅇㅈ 음악학원장님은 친절하시고 성품은 좋았다.
다만, 배우는 입장에서는 레슨 지도를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에선 지워져 있었다.
아까운 작곡가들의 음악저서모음집들을
나름 비싸게 주문해서 사고한 것들이었지만,
꿈나무들에게 기증한 셈 친다는 마음으로
원하는 조건에 맞는 음악학원을
사랑 찾아 인생을 찾듯이 헤매이게 되었다.
나는 음악학원의 선정에 있어서 만큼은 세 번째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각도로 보는 안목이
더해져만 갔다.
배우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경험치에서 우러나온 안목일 , 터
첫째, 가정이 딸린 음악학원은 피한다.
가족들이 다 머물고 있으니까
차 한잔 마시는 것까지는 좋은데
주위가 산만해서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둘째, 콩쿠르지도 하지 않는 곳은
원장님의 실력이 현장에서 검증되지 않으므로
제외하였다.
셋째, 너무 바쁜 학원이나 마치면 땡 하고
수업 종료 시키는 학원은
열정적인 것만큼은 전 세계톱클래스 격인
나의 마음을 자꾸만 어둡게 하는 요소로 탈락시켰다.
원하는 학원을 이다지도 찾기가 어려울쏘냐!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음악은 초콜릿처럼 합법적인 마약'이라고들
말한다.
나는 집 근처의 학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과외를 받기에는 부담스러워서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무렵에,
새로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기 이름을 내어 걸고
차린 나와는 두 살 차이 나는
키가 작고 안경을 쓰고 나처럼 둥글게 생긴
원장님과 와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는!......."".
똑 부러지면서도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눈높이에 맞추어서
레슨지도를 아주 꼼꼼하게 해주시는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랬던
꿈에 그린 원장님을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원장님! 저 전공자코스 밟을 건대요
그대로 부탁드릴게요."
원장님은 나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듯이
채워 주었다.
하농, 바이엘. 체르니. 기타 악기교재등
시간이 끝나도 남아서 연습하도록 배려까지
잊지 않고 해주었다.
규칙적이게 떨어지는 악보대로
손가락 번호에서
어긋난다고 싶어질 때는
차분한 어조로
엄청 불호령처럼 느껴지도록
교정을 시켰다.
덕분에 나는 피아노 건반 위에서 만큼은
초밀도처럼 몰입하면서 칠 수 있었다.
여전히 어렵다.
어려운 악보는 한곡 가지고
한 달을 쳐야만 감이 오기도 하였다.
"정화 씨! 원색옷들이 참 잘 어울리네요"
칭찬해 주던 날 이때다 싶어서
" 원장님! 가족들은 음악가집안이네요!"
기다렸다는 듯이 "네, 정화 씨 종교 있으세요?"
"예,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
" 아! 저는 ㅈㅍ교회 다닙니다".
나는 기뻤다. 왠지 잘 통할 것 같았다.
어느 날 학생들이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었다.
" 원장님! 바이올린 악기가 있어서 그런데
배울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나는 쾌재를 부르면서 E, A, D, G 운지법을
익혀 나갔다.
그 당시 피아노 배우는 시기에는
여러 사람과 접촉을 단순화했었다.
내게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반공회관을 빌려서 쇼팽 왈츠로
콩쿠르 대회를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디데이 때 공연이 끝나고 나서
심사위원들 중 한 분이
"언제부터 피아노 시작했나요?"
성인기에 시작한 것을 발견하고는
"꾸준히 연습하면 더 잘 칠 거예요."
용기를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다음 날 더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자세로
엉덩이를 피아노의자에 완전히 본드같이
딱 붙이고는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연습을 이어 나갔다.
하루는 "정화 씨! 열쇠를 맡기고 갈 테니 문단속 잘하시고 가세요"!
나는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부분연습에 착수하였다.
맙소사! 신데렐라 구두처럼 종이 땡땡땡
치면 얼른 학원을 빠져나가거나 집으로 되돌아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벽닭이 우는 줄도 모르고
피아노 치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다음날 원장님께서 조용히 나를 불렀다.
"정화 씨! 어제 몇 시까지 학원에서 연습했나요?"
"죄송해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날 꼬박 새웠어요!"
키는 반납하고 너무 늦은 시간까지
말고 밤 열 시까지 연습하다가 갔다.
엄지 피아노 음악학원장은 내게 알파선생님으로
다가왔었다면 나는 이분을 오메가선생님으로 받아들이기를 작정하면서
마음속 보물창고에 꼭 모셔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별하게 되는 고배를 마시게 된다.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원장님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 것이었다.
"원장님! 결혼해도 원장님께 지도받으러 와도
될까요?"
음악에 진심이고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내게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신 분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예술이었다.
"정화 씨! 정화 씨에게 더 이상
가르쳐 드릴 것이 없네요"
"왜요?"
나는 눈이 휘동그레지면서
원장님 얼굴을 빤히 쳐다 보니까
엷은 미소는 조만간 헤어질 것임을 예고하였다.
음악을 이 정도로 사랑한다면 독학을 해서라도
얼마든지 해낼 것이다라는 암묵적인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다.
이후에 동래에 있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음악학원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성의가 없고 머리숫자만 세는 사업성이 짙은 학원에 그만
쇼크를 먹고 집에서 피아노를 쳤다.
틈만 나면 그동안 배운 것들을 펼쳐서
혼자서 독학으로
주야장천 하얀 건반과 까만 건반을 두드리거나
지인들 앞에서 솜씨를 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