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한 시작을 위해
몇 문장을 썼다가 지웠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지금도 글 쓰는 일로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오랜만에 내 생각을 적어 내려가려니 흰 페이지 위로 내 머릿속의 이야기가 가감 없이 활자로 변하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심지어 ‘가독성’이 중요한 블로그 원고 업무를 하고 있어서, 방금도 습관적으로 엔터키를 누르다가 고쳤다.)
일기도 쓰지 않고, 속절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내가 갑자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를 먼저 말해야 할 것만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이룬 것 하나 없는 취업 준비생이기 때문이다.
‘게으른’, ‘걱정 많은’ 정도의 수식어가 몇 가지 더 떠오르긴 하지만, ‘이룬 것 없는’을 쓴 이상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엔 남은 올해 동안 이뤄낼 목표를 하나 정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저지르는 것이다.
저지르기. 내 목표가 성취라거나 성공이라거나 실행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아닌 이유는, 역설적으로 내 행동에 대한 가치 판단이 개입할 때부터 나는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게으른 완벽주의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러한 성향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번번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잡념과 고민, 생각이 누구보다 많아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의 소음만 들끓을 뿐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생각만 반복하고,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기만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지난 몇 년간 스스로를 자책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이 생산성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중이라면 단번에 명쾌한 해답 하나가 떠오를 것이다.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잡념을 행동으로 옮기면 아이디어가 되고,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면 그것은 글이 된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 그것은 성취가 된다. 그래서 무척 힘든 일이겠지만 지금 당장부터 나는 나의 잡념, 고민, 생각을 아이디어, 글, 성취의 영역으로 옮기고자 한다. 변화의 시작점은 이 글을 쓰는 지금부터다. 라고 한 번 되뇌어 본다.
-
이제 지금 내 상태를 말해볼까? 요즘 나는 ‘취준정병’에 걸려 있다. 스스로의 신상을 익명의 인터넷에 올리는 게 꺼려지긴 하지만, 나는 문예창작과 출신이다. 이는 대학교 내내 글쓰기가 내 전공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분명 쓰기는 내게 자신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자신감과 무관하게 대부분의 직무에서 글만 잘 쓰는 사람을 원하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도 필수적인 역량에 포함되는 직무를 찾기로 결심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었다. 학부생 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방송작가, 드라마작가, 출판 편집자 같은 직업부터 기자, PD, 기획자, 에디터, 마케터 등. 글쓰기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어마어마한 수의 경쟁률과 함께.)
그럼 그런 걸 준비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달리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단 하나도 재미있어 보이는 게 없었다.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왜 문창과에 진학했냐고 하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하던 나였다. 그렇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분명 하고 싶던 일이었다. 하지만 방금 나열한 직업군을 알아보고, 그 직무에서 업무를 보는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대부분 지루함과 걱정이 먼저 밀려왔다.
나는 정말 되고 싶은 게 없는 걸까?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일까? 이 혼란스러운 의문을 하던 중, 얼마 전 또 다른 직무를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UX\CX writer’였다.
관련된 책 하나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던 선택지에 있는 직무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최근 들어 해당 직무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비벼보기로 결심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병적으로 유심히 들여다보고, 과제물을 제출할 때면 수십 번 소리를 내어 읽으면서 문장들을 점검했던 나에게 왠지 꼭 맞을 것 같았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한 2주 전의 일이다. 매일 구글링을 통해 국내 UX 라이터들이 쓰거나 번역한 아티클을 읽었다.
위계와 질서 속에서 사용자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최적화하느냐?
당신의 문장을 얼마나 실용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가?
아티클들을 훑어 본 결과, 적어도 내가 분석한 바로는 위 두 질문이 ux writing이라는 직무의 핵심 역량이었다. 왠지 자신감이 들고, 해 보고 싶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깨닫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것부터 저질러보기로 했다.
관련 포트폴리오도, 비슷한 직무에서의 경험도 없던 내가 UX writer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던 와중, 내가 평소 사용하는 앱들의 문구들부터 재고하고, 나름대로 개선해서 이곳에 업로드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일이 내게 어떤 성과와 의미를 가져다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러한 결심을 한 것 자체만으로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든다. 이제 본격적으로 커리어의 발판을 닦아봐야겠다는 다짐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혹시 여기까지 읽은 분이 있다면,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