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중고차 매물을 보기 위해, 사용자의 이름과 주소를 수집해야 한다면?
원래 차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가, 요즈음은 운전에 익숙해지고 싶어 중고차를 알아보고 있다. 차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늦기 전에 운전을 배워야겠다는 강박 때문에 그런가, 여전히 알아보는 일이 귀찮기만 하다. 심지어 보험이며, 사고 이력이며 확인하고 처리해야 할 절차도 많아 더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챌린지도 역시 이러한 나의 현실적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사용자가 자동차 구매 앱을 둘러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위치 정보 없이는 콘텐츠가 로드되지 않습니다. 사용자는 그들의 주소와 이름을 입력해야 합니다.
<챌린지>
불필요하게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사용자의 거주지와 이름을 요청하세요.
글자 수 제한 : 헤드라인 25자 이내, 본문 45자 이내, 버튼 15자 이내 (영문 기준)
오늘은 임의로 챌린지를 변경했다. 웹사이트 대신 앱으로 바꿨고, zip code와 first name은 이름과 주소로 로컬라이징(?)했다.
"고객님의 000을 입력하세요."
온라인 서비스에서 이 문장을 마주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멈칫하게 된다. 어느 서비스든 나의 신상 정보를 등록한다는 사실이 꺼려지기 때문이다. 특히 잊힐 때마다 어김없이 발생하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이 거부감에 한몫한다.
내 정보를 요구하는 저 너머의 존재가 믿을만한 상대인지 경계되는 건 본능적인 마음이다. 물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보들이 필수적인 것을 알 지라도, 공급자의 필요는 사용자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찜찜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오늘 과제는 이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내려 보는 계기였다.
물론 대부분의 서비스 사용자는 큰 거리낌 없이, 공급자가 원하는 정보를 내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더 좋은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이게 '사용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는 걸 인지시켜야 한다. 개인정보를 주고 얻는 대가가 충분하도록,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해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이 UX 설계의 역량일 테다.
나는 이 차가운 교환을, 어떻게 하면 따듯하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왜 내 정보를 요구할까?"라는 의심에 사용자를 빠뜨리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대답을 미리 준비하는 게 핵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용자가 얻을 수 있는 밸류를 헤드라인에서 강조하는 게 좋겠다고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그 정보들이 왜 필요한지도 목적을 투명하게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쏘카의 화면을 기반으로 작업했다. 쏘카는 렌트 서비스지만, 라이팅은 중고차 구매 앱이라고 가정하고 라이팅을 했다.
헤드라인에 이 서비스가 줄 수 있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전략은 명확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담을 건데?'라는 고민에는 쉽사리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사용자가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목적은 '중고차 쇼핑'일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근처 중고차들을 확인해 보세요"라고 딱딱하게 써 보았다.
하지만 무언가 와닿지 않았다. 물론 이 팝업의 기능적 목적은 '근처 중고차 확인'이 맞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헤드라인에 쓰는 것은, 아무런 감흥 없는 '설명문'처럼 느껴졌다. 이대로면 서비스의 목소리도, 페르소나도 잡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서비스의 페르소나를 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더 인간적인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사용자를 위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준다는 인상이 필요했다. 물론 근처 중고차 목록을 확인한 뒤, 여러 조건을 꼼꼼하게 비교해서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용자가 직접 해야 하는 몫일 테다. 하지만 단순히 근처 중고차 목록을 로드하는 일을, 사용자를 위해 '대접'하는 행동처럼 표현한다면 어떨까? 분명 효과적일 것 같았다. 이러한 이유로 "차를 찾아드릴게요!"라는 능동적인 문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에 쏙 드는 차"라는 표현을 더했다. 이는 사용자가 이 서비스를 통해 최종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 즉 '사용 의도'를 다시 한번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두 문장을 조합함으로써, "우리는 당신의 최종 목표 달성을 돕기 위해, 당신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정보를 요청하는 것입니다"라는 분명한 의도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름과 주소를 요구하는 팝업이기에, 본문에서 가장 크게 고민한 지점은 단 하나였다.
바로 1) 사용자 정보 요구 , 2) 정보 수집 목적 설명 간의 순서를 어떻게 배치할지였다. 결론적으로 요구를 먼저 하고 그다음에 목적을 설명했는데,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만약 2)를 먼저 작성하고 1)을 나중에 쓴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이런 방식이 될 것이다.
"근처에서 판매 중인 중고차들을 보시려면 이름과 주소가 필요해요."
어딘가 묘한 압박감과 함께, 기시감이 드는 문장 구조이지 않은가? 조금 과장을 보태면, 약간 영화 속 인질범이 할 법한 대사 같기도 하다. "너의 자식을 구하려면 3억을 줘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한국어의 가장 큰 특성은, 문장의 마지막에 오는 서술어로 문장 전체의 의도와 성격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밥 먹게 어서 들어와"는 '들어오라'는 의도가, "어서 들어와서 밥 먹어"는 '밥 먹으라'는 의도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 가설에 따르면, "정보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마지막에 배치하는 순간, 그 문장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순서를 바꾸었다. "이름과 주소만 등록하면,... 목록을 보실 수 있어요." 이 문장은 마지막 서술어가 '(중고차 목록을) 볼 수 있다'는 사용자의 혜택으로 끝난다. 이로 인해 정보 수집이라는 시스템의 목적보다, 사용자가 얻게 될 이득을 더 강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름과 주소를" 대신 "이름과 주소만"이라고 조사를 바꾼 것도 의도적인 선택이다. '만'이라는 작은 글자 하나가, "우리는 딱 이 두 가지 최소한의 정보만 요구합니다"라는 뉘앙스를 주어 사용자의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효과를 준다.
버튼은 사용자가 이 팝업을 떠나 마주할 다음 화면을 명확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확인', '입력'과 같은 모호한 단어 대신, "가까운 중고차 보기"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사용자의 부담을 줄이고자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한다면, 이름과 주소를 모두 입력하기 전에는 버튼이 비활성화(회색) 상태이다가, 입력이 완료되면 활성화(파란색)되는 인터랙션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에게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시각적인 피드백을 주어, 더 매끄러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오늘 챌린지에서는 약간의 딜레마와 현타를 느끼기도 했다. 실제 앱 환경이라면, 소셜 로그인을 통해 이름을, 위치 정보 활용 동의를 통해 지역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어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사용자에게 이름과 주소를 직접 입력하라고 요구하는 과정은, 특히 지금의 모바일 UX 환경에서 다소 구식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차량 구매 서비스인데 이름과 위치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됐다. 아무리 중고차라도 차량이라는 고가의 물건을 거래할 때, 굳이 근처나 동네에서 사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사용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목표 달성을 돕는 것이 일종의 연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느끼기에 라이팅은 서비스 설계나 프로그래밍보다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UX 라이터의 실제 업무 또한 서비스의 불편함에 대해 토로하기보다는, 급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최선의 답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더 가까울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눈 여겨둔 회사의 신입 채용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 바쁘게 살고 있는데, 조금만 더 노력해서 얼른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급해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사는 법을 잘 모르긴 하지만, 취준생으로서도 예비 라이터로서도 균형 잡힌 생활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