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잘못 입력했다고 나오는데, 사실 잘 입력했다면?
나는 계정명을 자주 바꾼다. 중학생 때는 초등학생 때 만든 아이디가 유치해 보였고, 고등학생 때는 또 중학생 때 만든 아이디가 촌스러웠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내 계정명은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어느 계정이 어떤 서비스에 연결되어 있는지도 가물가물해서, 오랜만에 어떤 서비스에 접속할 때면 당혹감을 겪곤 한다.
결국 희미한 기억에 의존해 로그인 창에 계정명을 적어 넣으면, 서비스는 종종 '너 틀렸어'라는 사실을 딱딱하게 알려준다. 분명 시작은 내 실수였지만, 그 차가운 메시지는 때로 작은 짜증을 유발한다.
그런데 만약, 시스템이 틀린 것이 '잊어버린 계정명'이 아니라, 나의 '이름' 그 자체라면 어떨까?
이번 12일 차 챌린지는 바로 그런 억울하고 민감한 순간을 다루었다. 사용자가 입력한 이름이 '가짜 이름 같다'라고 시스템이 판단했지만, 그 판단이 틀릴 수도 있는 상황. 사용자의 정체성 그 자체인 '이름'을 건드리면서도, 불쾌감을 주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려면 어떤 라이팅이 필요할까?
사용자가 계정을 생성하던 중, 이름을 입력하는 단계에서 오류 메시지가 나타났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사용자의 이름이 가짜 이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는 5%의 확률로 잘못 판단하기도 합니다.
<챌린지>
가짜처럼 보이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용자에게 창피함을 느끼게 하지 않으면서, 오류를 수정하도록 유도하는 메시지를 작성하세요.
이번 과제는 비슷한 오류 메시지 형식이지만, 지난 Day 4에서 다루었던 이메일 오류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시스템이 이름을 '거짓(fake)'으로 판단한다는 상황 자체가,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흔히 마주치는 오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영미권처럼 다양한 문화와 이름이 공존하는 환경에서는 더 자주 발생하는 문제일 것 같다.
어려운 이유를 한 가지 더 찾자면, 오류의 대상이 사용자의 '정체성' 그 자체라는 점에 있었다. 이메일 주소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사용자의 실수를 바로잡는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이름을 문제 삼는 것은 화면 너머 사용자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따라서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다.
따라서 오늘 챌린지의 핵심은 '절대 비난의 뉘앙스를 넣지 않는 것'이었다. "당신의 이름이 이상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용자는 방어적이 되거나 모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스템이 틀렸을 가능성이 (무려 5%나) 존재하기에, 단정적인 표현은 절대 금물이었다.
그래서 문제의 원인을 '사용자의 이름'이 아닌, 시스템으로 돌리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름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뉘앙스를 준다면, 책임을 시스템 쪽으로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접근법을 고안했다.
1. 우선 가장 기본적인 라이팅을 쓰기. 혹시 모를 사용자의 단순 입력 실수(오타 등)를 점검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로그인이나 회원가입 모달에서 무언가를 잘못 입력했을 때, 대부분 입력창 밑에 나오는 그 문구 말이다. 이때 최대한 중립적이고 비난의 여지가 없도록 쓰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2. 챌린지에서는 사용자의 이름이 조금 특이하다는 걸 가정하는 듯하다. 이때 사용자가 내용을 재확인해도 오류가 반복된다면, 이는 시스템의 문제일 것이다. 이때 사용자가 좌절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명확한 행동 유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황금까마귀라는 사용자가 있다고 가정하고 작업했다. (한국어 서비스에서는 이름이 5글자 이상 사용자가 아무래도 비슷한 문제를 겪기 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 더 친근하게 말하거나, ("정확한 이름이 맞나요?") 정확히 쓰는 버전을 ("성함이 올바르지 않습니다") 고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종안으로는 조금 길고, 딱딱하고, 명확하지 않은 문장을 선택했다. 의도적으로 사용자의 '이름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표현 대신, 사용자의 '입력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건, 혹시 모를 오타를 수정할 기회를 주면서도, 사용자의 이름이 문제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가장 '일반적으로'쓰이는 텍스트면서도, 가장 안전하고 중립적인 방법이다. 또 '다시 확인'이라는 행동을 명확히 안내하여 사용자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도록 했다.
이 부분은 이번 챌린지의 목적에 제일 가까웠다. 시스템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억울하게 오류 메시지를 본 사용자를 위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우선 질문형 문장("~되시나요?")으로 시작하여, 시스템이 사용자가 겪고 있을 어려움을 미리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는 사용자에게 단순히 오류를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배려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는 당연히 서비스의 신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고객센터'라는 구체적인 해결 경로를 제시하여, 사용자가 문제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돕는다.
여기서 '고객센터' 단어를 파란색으로 강조해서, 링크를 걸어두었다. 오류 상황에서 사용자가 또다시 회원가입 화면을 벗어나 고객센터 메뉴를 찾아 헤매는 번거로움을 막기 위해서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로를 열어준다면, 보다 빠르게 사용자가 사용 목적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과제는 '오류 전달'이라는 목적을 전달하면서도, 사용자의 감정을 해치지 않아야 했다. 이 균형을 잡는 것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시스템의 입장에서 '가짜 이름'을 걸러내야 하는 목표와, 사용자 입장에서 '내 진짜 이름'을 존중받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내가 내린 답은 솔직함에 있었다.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같은 오류가 반복되시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를 돕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의지('고객센터로 문의해 보세요.')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사용자의 상처를 최소화하고, 오히려 서비스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하지만 "입력한 내용을 다시 확인해 주세요"가 과연 최선의 라이팅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단순히 너무 '평이한 라이팅처럼 보여서' 아쉬움이 남는 건지, 혹은 사용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더 정확히 안내할'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지, 아직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
예를 들어 "오타나 특수문자가 포함되지 않았는지 확인해 주세요"와 같이 구체적인 가이드를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까? 아니면 오히려 '내 이름에 특수문자가 어디 있냐'며 더 큰 불쾌감을 줄까? 이 지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사례를 접하며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