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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Dec 18. 2021

한 달 살기 want 일까? Like 일까?

어쩌다 접어든 남편과의 단짠단짠 공동육아 기록

남편이 퇴직을 하고 잠시 쉬는 시간이 생겼다는 소식을 주변에 전했을 때, 가장 많이 권유받은 일 중 하나는 여행 아니면 한 달 살기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마음이 동했다. 언제 또 이렇게 온 가족이 길게 쉬는 시간이 생기려나, 계절도 여행하기 딱 좋은 가을인데 훌쩍 떠나볼까? 여기저기 여행지도 검색해 보고, 이참에 한 달 살기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한 달 살기를 한다면 어디로 갈까? 제주도? 강원도? 이런 생각을 하다가 곧 그만두었다.


왜 그랬을까?


 한 달 살기를 염두에 두고 검색을 했을 때, 일단 숙소가 마땅치 않았다. 괜찮아 보이는 숙소는 이미 예약이 완료되었고, 그나마 예약이 가능한 숙소는 정말 헉 소리가 날 만큼 비쌌다. 이대로라면 숙소에만 예산의 대부분을 쓰고 여행 준비를 해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정보가 너무나 많으니 결정하기가 어렵고 혼란스러웠다. 더군다나 세 살 된 아이를 데리고 코로나 시국에 장거리 이동이라니, 그 또한 고민이 되었다. 가지 말아야겠다는 이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겨나면서 한 달 살기는 마음에 접어두었다.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책 <적정한 삶>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Want와 Like를 구분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데 나만 없을 때, 인간은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며 강한  want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마음이 들 때면 꼭 한번 멈춰 서야 한다. 이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원하는 건지, 아니면 모두 갖고 있는데 나만 없어서 원하는 건지. like는 오롯이 자아만이 존재하는 상황, 타인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도 혼자 당당하게 좋아할 수 있다면 그게 정말 like가 아닐까?

- 적정한 삶 중에서


나에게 한 달 살기는  Want 일까? Like 일까?


  구절을 읽고 나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살기나 여행이 want 가깝다는 결론에 닿았다. SNS 예쁘고 멋진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유명한 장소에 가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행복한 사진만 보아도 당장 나도  대열에 끼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시간도 있는데 왠지 여행이든   살기든  해야  것만 같기도 했다.

 한 번은 비슷한 시기에 한 달 살기를 준비하는 친구 A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숙소도 결정해야 하고 할 일이 많다고 하기에,

"너무 스트레스받아가면서 준비하지 마. 좋자고 하는 일인데" 했더니 친구는

"이 과정이 즐겁고 기뻐"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엔 이 친구는 한 달 살기가 Like 인 것 같다. 준비 과정부터가 즐거움이니까, 가서 여행의 기쁨으로 충분히 보상받지 않을까. 나는 일단 그 과정이 벌써 피곤하고, 즐겁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꾸역꾸역 스트레스받아가며 준비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want를 위해 에너지를 쏟기엔 그럴만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내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want가 아닌 Like를 선택하기로 했다.


숙소, 목적지 정도만 정하고 훌쩍 떠나 되는 대로 하는 대충 여행을 지향한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혼자 기차 타고 훌쩍 떠났던 2박 3일의 강원도 여행인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삼각김밥에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연명하고,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유명한 관광지나 식당은 찾아가지 않았다. 지지리 궁상이고 실제로 숙소에 돌아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그래도 발길 닿는 대로, 도착한 어느 한적한 마을의 바닷가에 앉아 한참 멍하게 앉아 있다가 숙소로 돌아온 기억은 가장 아름다운 여행의 한 장면이다. 이런 대충 여행을 하는 내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한 달 살기라니. 대충 준비 없이 떠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준비를 하자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문득 내가 육아가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나만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인데, 육아는 내가 아닌 아이 위주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내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니 그 허전함을 달래고자, 밤마다 잠도 안 자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다양한 온라인 세상을 헤매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Like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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