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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Dec 15. 2021

판관 포청천 말고 남편이랑 살고 싶다.

어쩌다 접어든 남편과의 단짠단짠 공동육아의 기록

 얼마 전 큰맘 먹고 세탁기 분해 청소를 맡기기로 했다. 자주 하기엔 가격이 부담돼서, 집에서 셀프로 세탁조 청소를 했는데 영 개운치 않아 큰맘 먹고 결재를 했다. 집에 남편도 있으니, 외부인이 와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도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세탁조 분해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청소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방문하신 기사님과 환불규정에 관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소는 청소대로 못하고, 돈만 내게 된 상황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더 속상한 것은 남편의 반응이었다.


"왜? 여보는 거기서 왜 그렇게 대답한 거야?"

"나도 그 말은 못 들었는데... 여보가 기사님 말을 오해한 거겠지, 에이 그냥 잊어버리자. 좀 쓰다가 진짜 안되면 세탁기 바꾸자. 응?"


바로 옆에서 같이 있었으면서, 내가 오해를 했다면 옆에서 좀 같이 거들 일이지, 그땐 가만히 있다가 일이 끝나고 나니 남의 일처럼 말하는 남편에게 슬슬 화가 났다.

거기다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이유나 물어보다니...


'자기가 판관 포청천이야 뭐야.'


 이마에 초승달 문신을 하고 금요일 밤마다 "개작두를 대령하라~" 외치던  판관 포청천.


나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들게 아니라, 상황에 대해 같이 정리를 하고 해결점을 찾아주길 바랐는데, 아니 적어도 옆에 같이 있었으니, 속상한 내 마음을 알아봐 줄 알았는데, 상황에 대해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만 하고 있었다.  판관포청천 납셨네 진짜....


사실 남편 말의 의도를 안다. 나에게 따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진짜 그 상황이 왜 그렇게 된 건지 정말 궁금해서 묻는 사람이라는 걸.


 이유야 어쨌든 난 마음이 상할 때로 상해버렸고, 말없이 설거지를 했다. 남편은 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괜히 또 옆에 와서 이말 저말 걸고 있었다. 남편 말에 대답하면 크게 화를 낼 것만 같았기에, 그 자리를 피하고자,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한번 더 참길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남편이 조용히 오더니 손을 내민다.


"여보 있잖아. 내가 눈치 없었어 미안해. 내가 옆에서 같이 챙겼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눈치 없이 마음도 몰라주고 아무 말이나 한 것 같아."


나도 화가 좀 가라앉은 상태였기에, 그 말에 그냥 "그래 알았으면 됐어"라고 대답했다.


연애 10년, 결혼생활 5년 도합 1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며, 이런 비슷한 일이 많았다. 내가 속상해할 때면 남편은 내 마음보단 상황 파악을 위한 질문을 하거나, 잘잘못을 파악하는 게 우선인 사람. 그때마다 나는 가뜩이나 속상한 마음과 서운함을 더해 몇 배의 짜증으로 되갚아 주곤 했다. 남편 입장에서도 그냥 궁금해서 물었을 뿐인데, 내 반응에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여전히 한 박자 늦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그래도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많이 발전했다며 칭찬을 했더니 으쓱해하며


"당연하지 과거를 잊은 남편에겐 미래가 없지." 라나 뭐라나...


어쨌든 단짠단짠 하루가 또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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