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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Dec 25. 2021

나의 로또 같은 남편

로또 같은 배우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맞는 게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냥 웃고 넘길 남 얘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딱 내 이야기다.


남편과 나는 다른 점이 너무 많은데, 특히 식성에서 맞는 부분이 별로 없다. 


밀가루 보단 쌀을 선호하는 나, 하루 종일 밀가루 음식도 괜찮은 남편

라면은 최소 신라면 인 나, 진라면 순한 맛만 고수하는 남편

회를 좋아하는 나, 횟집에선 튀김만 먹는 남편

가끔 술도 마시는 나, 술은 한잔도 못 마시는 남편

미역국을 사랑하는 나, 미역국 국물만 먹는 남편

보쌈보단 족발을 선호하는 나, 족발보단 보쌈을 선호하는 남편

군것질을 잘하지 않는 나, 군것질 마니아인 남편

삶은 계란을 먹지 않는 나,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 남편


 이야기하자면 정말 끝도 없다. 연애할 땐 이런 면을 몰랐을까? 무려 10년이나 연애했다면서? 사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우린 공통점이 별로 없는 데 특히 식성이 잘 맞지 않다는 것을. 그렇지만 그땐 각자 먹고 싶은 1인 1 메뉴를 시켜먹으면 그만이고, 그게 아니라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삼겹살을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막상 결혼을 하고, 음식 준비를 해보니 식성 차이가 꽤 거슬리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연애 때처럼 매번 1인 1 메뉴를 사 먹을 수도 없고 각자 기호에 맞게 메뉴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아이도 있으니, 아이 메뉴와 어른 메뉴 두 가지를 동시에 차리는 것만으로도 요리 망손인 나에겐 매끼가 도전이다. 남편은 결혼 전에 늘 강조하기를 본인은 입맛이 까다롭지 않고, 식탐이 없어서 매끼 계란 프라이와 김만 있으면 괜찮다고 했지만, 어디 그게 가능한가. 더군다나 식탐도 없다면서 가리는 음식은 뭐가 그렇게나 많은 건지. 


그래서 메뉴를 선정하고 음식을 할 때,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맵지 않은 음식을 못 먹는 것이 아니므로, 매운 음식을 못 먹는 남편의 기호에 맞게 맵기를 조절한다던가 굳이 남편이 잘 먹지 않는 미역국을 일부러 끓이는 일이 없게 되었다. 남편이 퇴직 후 집에 있으니, 하루 세끼를 차리면서 그런 충돌이 더 잦아졌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단, 남편이랑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을 고르고 골라 음식을 한다. 그렇게 나는 나만 남편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단단히 착각했다. 


어느 날 산책을 나왔다가 빵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참고로 나는 빵을 잘 안 먹는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편인데, 남편은 빵을 무척 좋아한다. 남편이 "빵 먹고 싶은데 몇 개 살까?" 하더니, 이내 "아니다. 사두면 여보도 잘 안 먹고 혼자 먹으니 맛없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남편의 말이 속으로 좀 놀랐다. 그렇게 좋아하는데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될 일이지 왜 내 눈치까지 보는가 싶었는데, 남편도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배려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가끔 면요리도 먹고 싶고, 어쩌다 한 끼는 빵이 든 요리도 먹고 싶을 텐데, 오로지 한식을 고수하는 아내 덕에 면요리는 평소에 구경을 잘 못하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아이 반찬을 만드느라 삶은 계란이 필요해서 물을 올리고 계란 하나를 삶으니, 남편이 대뜸 "어차피 하는 김에 몇 개 더 삶아주면 안 돼? 나 삶은 계란 좋아하는데" 내가 삶은 계란을 안 먹으니 남편이 좋아한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차피 하는 김에 몇 개 더 삶아 주면 되는데...

그리고 장을 볼 때도 남편이 좋아하는 군것질 거리나, 빵 종류를 알아서 사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남편은 한 번도 불만을 말을 한 적 없긴 하다. 같이 마트에 가면 허겁지겁 본인 군것질 거리를 담기는 하지만...ㅎㅎ 괜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나만 남편을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도 나만큼 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십 년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다 만난 남녀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그 두 사람이 아무리 서로를 사랑한다고 한들 각자가 가진 개성을 모두 똑같이 맞출 순 없을 것이다.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고 하는 순간 싸움이 난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적당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면 안 맞는 식단을 고민만 하지 말고, 그런 날은 그냥 둘 다 좋아하는 삼겹살을 구우면 되는 것처럼. 그리고 나만큼이나 상대가 나를 배려하고 있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상대가 나의 배려를 모른다고 생각된다면, 먼저 슬쩍 말해 보는 것도 좋다. 말하지 않아서 모르는 일도 많으니까. 그리고 각자 다르기에 그 안에서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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