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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Dec 28. 2021

그의 빈자리

어쩌다 접어든 남편과의 단짠단짠 공동육아의 기록

아이가 자기만의 놀이에 푹 빠져있다. 살그머니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간다.


3,2,1


"엄마 뭐해? 안아줘!"


눈치 빠른 봄이에게 들켜버렸다. 

어느새 아이가 내 발밑까지 쪼르르 달려와서 두 팔을 쭉 벌리고 서있다.

귀여운 방해꾼

어이쿠 소리가 절로 나지만 번쩍 안아 주고는 얼른 점심 준비를 작한다.




 남편이 오늘 점심 약속이 있어 집을 비웠다. 꽤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남편이 회사를 다닐 때는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밥 치리는 일이 매번 미션의 연속이었다. 다만 10분이라도 여유를 주면 좋으련만 아이는 내가 밥을 준비하려고만 하면 이제 혼자서 꽤 잘 놀다가도 우다다다 달려와서는 안아달라, 놀아달라 한바탕 난리가 난다. 밥 준비해야 한다고 통사정을 해보지만, 좀처럼 통하는 법이 없다. 책을 가져와서 옆에서 곁눈질을 읽어주며 음식을 하기도 하고, 장난감을 쥐어줘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방법이 안 통하면 고이 넣어둔 아기띠를 가져와 안거나 등에 업고 음식을 하는 날도 많았다. 남편이 퇴직을 하고 집에 있는 동안은 이런 수고로움이 좀 줄었다. 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는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 정신없음을 한 3개월 만에 느끼고 나니 혼이 쏙 빠졌다. 어찌어찌 점심을 차려먹고, 설거지는 나 몰라라 하고 아이 옆에 앉아 놀기를 한참, 남편이 돌아왔다.


"보고 싶었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제 이번 주가 지나면 공식적인 남편의 퇴직기간이 끝이 난다. 우리의 짧았던 공동육아도 곧 끝이 난다는 의미이다. 입사 후 첫 3주간은 재택으로 온라인 교육일정이 있어, 집에는 머물지만 이제 8시부터 5시까지는 한 집안 안에서도 남편은 남편대로, 나와 아이는 우리대로 예전처럼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매일 눈뜨면 아빠가 함께 하던 아이도 변화에 조금씩 적응해 가야 할 때가 온다. 나 역시 남편이 있어 수월했던 시간들이 좀 줄어들 테니 마음의 준비를 다시 해야 할 테고. 오늘 남편의 몇 시간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 이유는 앞으로 겪을 변화를 미리 체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3개월간 아이는 키도 3cm 자라고 어금니도 2개나 났다. 몸이 자란 만큼 아빠와 놀이도 익숙해지고, 책을 들고 자연스럽게 "아빠 읽어주세요" 할 만큼 아빠와 가까워졌다. 여전히 잠은 아빠와 안자지만...ㅎㅎ

 남편도 아이가 어떤 놀이를 하는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말과 표현을 하는지, 예전보다 아이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어서 좋다고 한다. 너무 잘 먹고 쉰 덕인지 오동통 뱃살을 얻은 것은 덤이다. 퇴직하기 직전 힘들었던 표정에 비해 표정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 3개월간 딱 붙어 있으면서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꽤 안전하게 3개월을 잘 보냈다고 말하고 싶다. 


 곧 새해가 시작된다. 남편은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낼 것이고, 나와 아이는 매일 일상에 아빠는 없지만, 또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자랄 것이다. 든든한 육아 동지가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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