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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Dec 29. 2021

겨울 냄새라는 말을 수집했다.

글을 계속 쓰고 싶은 사람입니다.

싱어 게인 2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요즘 한창이다. 평소 TV를 잘 보진 않지만, 잠들기 전 우연히 남편과 함께 그 프로그램을 조금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디션 참가자들의 노래가 듣는 것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있다가, 심사 위원석에 있는 김이나 작곡가의 심사평에 눈길이 갔다. 어느 참가자가 노래를 끝내고 나서 김이나 작곡가가


"후각을 자극하는 목소리는 처 음예요. 겨울이 온 것을 온도보다 바람 냄새에서 알잖아요. 겨울바람 냄새처럼 차갑고 깨끗하고, 시작을 알리는 듯한 목소리예요."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그 참가자의 노래가 좋다고는 생각했는데, 그래서 좋다 라는 말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표현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게 겨울 냄새라는 표현을 하다니. 그 몇 문장 속에서 그 가수의 그날 노래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 사람 참 감각적으로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이나 작곡가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작사가다. 아름다운 노랫말을 쓰는 사람이니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평을 들으며 다시 한번 그 사람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독특하면서도 하나같이 공감이 가는 말이라 그녀의 심사평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는 요즘 거의 매일 글을 쓴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글을 쓰다 보면 금세 길을 잃는다. 내 마음속에 있는 엉킨 생각들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손끝에서 말이 계속 맴돌다가 만다. 내가 무슨 말을 적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나도 김이나 작사가처럼 감각적인 표현 좀 쓰고 싶은데 맨날 밋밋한 일기 같은 글이나 쓰는 것 같아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끝이 애매모호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헤매고 있다. 쓰면 쓸수록 내 한계가 잘 보인다. 나는 그렇게 여러 번 겨울을 맞았으면서도, 겨울 냄새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나만의 말 사전을 차곡차곡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심하게 바라보고, 다르게 바라보고, 좋은 표현들을 수집하고 그러면 나도 겨울 냄새 같은 멋진 표현을 하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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