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엄마이야기.
결혼하고 맞은 시댁에서의 첫 명절
내게 너무 생경했던 한 장면이 있다.
남편과 시누 두 명
장성한 아들 딸이
쉴 새 없이 시어머니를 찾는 모습
"엄마 ~ 이거 어딨어?"
"엄마 ~ 이거 어떻게 해?"
"엄마~~~"
돌림노래처럼 엄마를 찾고,
엄마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11살이 되던 해
엄마가 집을 떠나고,
우리 집에선 엄마라는 단어는 금기어였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해서 상을 받은 일이 있었다.
아빠는 내가 쓴 글을 보고
없는 엄마를 거짓으로 꾸며내서 상을 받았다고
칭찬은커녕 되려 혼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엄마라는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꾹꾹 숨긴 채
무엇이든 혼자서 해내야만 하는 아이가 되었다.
친구들이 엄마와 있었던 이야기를 할 때,
특히, 엄마와 다투었다는 말이나 엄마가 밉다는 말을 할 때
그리곤 언제 그래냐는 듯 엄마와 잘지내는 모습을 볼때
나는 그런 엄마와의 관계가 참 낯설었다.
시간이 지나 엄마와 다시 연락이 닿고,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상대가 다시 생겼을 때에도
나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어딘가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엄마는 무엇이든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같이 편한 모녀 사이를 원했지만,
나의 힘듦이 엄마에게 짐이 될까,
나의 모난 모습에
예전처럼 엄마가 사라져 버리는건 아닐까 두려웠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늘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주려 애썼다.
언제나 엄마와 나 사이에는 미묘한 벽이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맘마인지 엄마인지 모를 둥그스름한 발음으로
나를 부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가끔 그만 좀 불렀으면 하는 마음이 들만큼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아이는 엄마를 부른다.
산후우울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엄마가 된다는 것이 막막하고 어렵기만 했던 날
문득 나는
엄마가 없었기에, 엄마가 되는 법을 모르는 거라고
괜히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가 우리 집에 다녀 가셨던 어느 날
그날도 아이는 끊임없이 엄마를 부르며
나에게 마음껏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엄마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시더니
"봄이는 엄마라는 말을 참 예쁘게도 하네. 엄마는 너무 어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엄마라고 불러봤던 기억도 잘 안나. 그래서인지 엄마라는 말이 참 낯설기도 하고 누가 엄마라고 부르는 게 가끔 부러워."
라고 이야기하셨다.
엄마가 5-6살 되던 무렵,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엄마는 나보다 더 어릴 때, 엄마를 잃었고
그 이후에는 누군가에게 엄마라고 불러본 일이 없었으니,
엄마의 삶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엄마를 꼭 안아드렸다.
그리고 그간의 엄마를 향한 뾰족뾰족 못났던 내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되도록이면 오래오래,
아이가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로 세상에 남아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나 역시 오래오래 나의 엄마를 부를 수 있길 바래본다.
살다가 지쳐 넘어질때, 그저 엄마하고 부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