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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Nov 21. 2021

세상 이기적인 놈이라고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했다

어쩌다 접어든 남편과의 단짠단짠 공동육아 기록

“나는 일 계속하고 싶어. 직장을 관두든 계속 다니든 그건 여보의 뜻에 따를게”


 우리는 아이를 낳기 전 주말부부였다.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며 각자 생활하고, 주말에는 달달한 신혼부부로 함께하는 생활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회사에서 커리어와 함께 통장잔고도 부지런히 쌓아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소중한 아이가 우리를 찾아왔다. 그때부터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함께 살지, 주말부부를 유지하며 평일엔 한 사람이 아이를 전담할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생각하면 함께 살며 육아를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간 쌓아 온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1년만 버티면 차장 진급 심사인데… 하지만 일을 계속하려면 누군가에게 아이 돌봄을 부탁해야 한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엔 어렵고,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어린아이를 맡기기도 불안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누군가의 희생은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남편과 나 우리 두 사람 중 하나든 아니면 우리를 믿고 태어난 작고 어린 우리의 아이든


 이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남편은 본인은 회사를 계속 다닐 생각이며, 어떤 결정을 하든 본인은 내 의견을 따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나는 서운한 마음에 남편을 본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놈이라고 그래 그렇게 육아에 대한 책임은 나한테 넘기고 그 회사에서 임원 달고 해 봐라 나중에 늙어서 실컷 구박해 줄 테니 라며 속으로 온갖 욕을 해댔다. (그랬던 그 남자는 결국 그 회사 퇴사하고 단짠단짠 공동육아를 함께 하고 있다.)


나는 둘 사이에서 정말 오래 고민한 끝에 퇴사를 결정했고, 현재까지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사회생활에 대한 갈증이 생길 때, 육아로 지치고 우울할 때마다 그때의 서운한 기억이 칼이 되어 매번 남편에게 되돌아갔다. 육아의 어려움을 당신이 아냐고, 왜 이 어려움을 나만 느껴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상처 주고 상처 받은 시간들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의 남편의 말과 행동을 돌이켜보면 본인의 커리어도 물론 중요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육아를 하고 아이를 돌본다는 게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게 두렵고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신문 기사나 TV에 나오는 아빠의 육아는 아직까지는 먼 이야기인 듯하다. 육아에 대한 책임을 나한테 떠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사회에 나가 돈을 벌며 경제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뜻일 테니까. 남편이라고 사회생활이 뭐 그렇게 즐겁기만 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밉고 서운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물론 글 쓰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여전히 울컥하긴 하지만...


 아이의 떼와 고집이 절정을 이루며 남편과 나의 멘털이 탈탈 털려 손가락 꼼짝 하기 싫은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있잖아. 난 여보 혼자서 이걸 다 감당한 거야? 그동안 진짜 힘들었겠다."


피식 웃음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그걸 이게 알았니?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안다. 당신도 나도 그동안 무척이나 애쓰고 살았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의 육아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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