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향한 미움과 사랑 그 어딘가에서
몇 년 전 회사를 다닐 때 일이었다.
직장상사 몇 분을 모시고 중국으로 전시회에 참석하는 출장을 가게 되었다.
보통 중국에서 비즈니스 업무 출장은 공항에서부터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자회사 직원의 지원하에 업무 통역은 물론 이후 식사까지 모든 일정을 다 알아서 해 주시기에 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그 출장은 단순 전시회 참석이 목적이었기에 현지 지원이 없었고,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호텔, 전시회장까지 알아서 이동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전 회장이 호텔 바로 옆이라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만 신경 쓰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생겨났다. 전시회를 돌아보고 호텔 뷔페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직장상사분께서 맥주 한잔 하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일행 중 가장 막내였던 내게 간단히 맥주 한잔 할만한 곳이 주변에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셨다. 급한 대로 휴대폰으로 주변 검색을 해봐도 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기 어렵고 해서,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호텔 프런트에 있는 직원에게 최대한 여유 있는 목소리로
"Excuse me"를 외쳤다.
그리고 맥주를 마실만한 펍이 주변에 있는지, 있다면 추천을 해달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직원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무지 입은 떨어지지 않고 나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기대하는 직장상사분들의 시선이 느껴지며, 식은땀이 났다.
한참을 쭈뼜대며 겨우 꺼낸 말
"I... want to drink beer... where....??"
뭐 이런 식의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뭐라고 떠들어 댄 건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빨리 그 상황이 끝나기 만을 바라며,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다행히 그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이곳에서 외국인이 갈만한 펍은 3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고백하건대 그 직원의 말이 너무 길고 빨라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OK. Thank you..."
하고 대화를 끊고는 대충 눈치로 그러려니 하고 유추했다.
그날 밤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비싼 칭다오 맥주를 마시며 출장지에서 첫날을 마무리했다. 그 자리에서 내색조차 하지 못했지만 어찌나 민망하고 속이 상한지, 그 날 마신 그 맥주는 정말이지 쓰고 맛이 없었다.
입시, 토익 점수를 포함해 각종 회화 수업까지 영어 공부를 족히 수십 년을 해왔지만, 왜 내가 하고 싶은 영어 한마디는 내 목구멍에서 콱 막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질 않는 건지, 답답할 노릇이다.
나는 오랜 시간 영어를 미워했지만, 그만큼 영어가 잘하고 싶고 좋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또다시 영어공부를 하겠다 마음먹었다. 과연 이번엔 영어와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