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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Sep 05. 2022

I want to drink beer를 외치다.

영어를 향한 미움과 사랑 그 어딘가에서

몇 년 전 회사를 다닐 때 일이었다.

직장상사 몇 분을 모시고 중국으로 전시회에 참석하는 출장을 가게 되었다.

보통 중국에서 비즈니스 업무 출장은 공항에서부터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자회사 직원의 지원하에 업무 통역은 물론 이후 식사까지 모든 일정을 다 알아서 해 주시기에 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그 출장은 단순 전시회 참석이 목적이었기에 현지 지원이 없었고,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호텔, 전시회장까지 알아서 이동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전 회장이 호텔 바로 옆이라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만 신경 쓰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생겨났다. 전시회를 돌아보고 호텔 뷔페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직장상사분께서 맥주 한잔 하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일행 중 가장 막내였던 내게 간단히 맥주 한잔 할만한 곳이 주변에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셨다. 급한 대로 휴대폰으로 주변 검색을 해봐도 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기 어렵고 해서,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호텔 프런트에 있는 직원에게 최대한 여유 있는 목소리로

"Excuse me"를 외쳤다.

그리고 맥주를 마실만한 펍이 주변에 있는지, 있다면 추천을 해달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직원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무지 입은 떨어지지 않고 나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기대하는 직장상사분들의 시선이 느껴지며, 식은땀이 났다.


한참을 쭈뼜대며 겨우 꺼낸  


"I... want to drink beer... where....??"


뭐 이런 식의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뭐라고 떠들어 댄 건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빨리 그 상황이 끝나기 만을 바라며,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다행히 그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이곳에서 외국인이 갈만한 펍은 3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고백하건대 그 직원의 말이 너무 길고 빨라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OK. Thank you..."

하고 대화를 끊고는 대충 눈치로 그러려니 하고 유추했다.


 그날 밤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비싼 칭다오 맥주를 마시며 출장지에서 첫날을 마무리했다. 그 자리에서 내색조차 하지 못했지만 어찌나 민망하고 속이 상한지, 그 날 마신 그 맥주는 정말이지 쓰고 맛이 없었다.


입시, 토익 점수를 포함해 각종 회화 수업까지 영어 공부를 족히 수십 년을 해왔지만, 왜 내가 하고 싶은 영어 한마디는 내 목구멍에서 콱 막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질 않는 건지, 답답할 노릇이다.


나는 오랜 시간 영어를 미워했지만, 그만큼 영어가 잘하고 싶고 좋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또다시 영어공부를 하겠다 마음먹었다. 과연 이번엔 영어와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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