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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Sep 07. 2022

빨간 영어 문법책을 기억하나요?

영어를 향한 미움과 사랑 그 어딘가에서

초등학교 때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어학원에서 회화 수업을 두세 달 배운 것이 영어 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 한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요즘은 유치원도 가기 전부터 영어를 접하지만, 적어도 라떼는 그랬다.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 


동네 어학원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있었으므로, 이 정도의 지문을 읽고 해석하고 따라 하는 정도는 그럭저럭 할만했다. 그런데 점점 나를 혼란에 빠지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문법이라는 녀석이었다.


I, my, me, mine

you, your, you, yours의 암기를 시작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문법 수업이 시작되면서 나는 점점 영어가 점점 싫어졌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빨간 영어 문법책이라 불렸던 성문 기초 문법책과의 만남이었다. 일단 책 표지부터 완벽하게 재미없어 보이는, 첫 장부터 무슨 말인지 단 한 줄도 이해가 되지 않았을 만큼 가슴이 콱 막히는 그 책과의 만남 이후 나는 영어와 완전히 멀어져 버렸다. 학원이나 과외를 할 형편도 아니었고, 학교 수업이 아니면 입시 준비가 어려웠던 나는 더 매달리고 열심히 해야 했지만, 피하고 도망가는 쪽을 선택했다. 


오죽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앞으로 보나 뒤 로보나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봐도 문과형 인간인 나는 영어가 싫다는 이유로 이과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과를 간다고 수능에서 영어시험을 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평생 영어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문과에 가면 왠지 영어를 더 많이 할 것 같다는 마음에 반편성 바로 직전에 이과로 전향을 했다. 참 단순하고 대책 없는 결정이었다 싶지만 내게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나눌만한 주변에 선배나 어른도 없었고, 심지어 담임선생님 조차도 내게 왜 갑자기 이과로 변경을 원하는지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만큼 영어공부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단순 어려움을 넘어 미움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재밌는 건 수능을 치고 나서 나의 성적과 갈만한 대학의 배치도를 펼쳐놓고 담임선생님께서 영문과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정말 수능성적을 토대로 큰 이변 없이 갈만한 학교의 단순한 매칭 그 자체였다.) 


 그때 성적에 맞춰 영문과에가서 억지로라도 더 공부 했다면 영어에 대한 내 마음은 조금 나아졌을까? 아니면 그 이전에 문법위주의 교육이 아닌 좀 더 나은 영어 교수법으로 배웠다면 나는 영어를 덜 미워했을까? 답은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이지만... 


 이런 기본기로 입시를 어떻게 치렀나 싶을 정도로 나의 영어 실력은 처참했고, 그렇게 대학에 가면 영어를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던 철없던 나는 토익이라는 거대한 산을 만나고야 말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엔 토익점수 같은 영어점수가 취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토익학원, 온라인 강의 등 참 많은 곳을 헤매고 다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게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 이력서를 겨우 낼만한 수준의 점수는 만들 수 있었다. 


 번번이 나의 발목을 잡고 힘들게 했던 그 영어,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영어 좀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꾸만 생겨났다. 그때 포기하지 말고 좀 더 열심히 해볼걸 하는 후회가 생겨났다. 


그렇게 나는 영어실력에 대한 로망을 품고 프로수강러가 되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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