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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Sep 17. 2022

나의 영어 사교육 체험기

영어를 향한 미움과 사랑 그 어딘가에서


나의 영어 사교육의 첫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로 올라간다.

그때 동네에 유일무이하게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었는데, 우연히 몇 달 다니게 되었다.

파란 눈의 백인 선생님이었는데, 이름은 휴, 호주에서 왔다고 했다.

그땐 호주라는 나라는 캥거루, 코알라만 알았을 뿐 그 나라 사람이 영어를 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 같이 학원에 다녔던 친구가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선생님의 이름과 출신지, 외모가 어렴풋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영어라는 낯선 언어를 하는 원어인이 정말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 

처음 낯선을 내 입으로 말하는 일은

그것이 꽤 재밌고 즐거웠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참 오랜 시간 영어가 밉고 싫었다.


두 번째 기억은 

대학교 2학년 때 토익 수업을 듣기 시작한 일이었다.

대학만 가면 영어에서 좀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취업을 하려면 토익이라는 영어 성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처음 친 토익에서는 반타작도 못하고야 말았다.

정말 영어 공부를 다시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취업은 해야겠기에 방학기간에 친구 추천으로 토익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토익은 듣기, 문법, 어휘, 문해력은 물론 시험 치는 스킬까지 종합적으로 필요한데

영어에 대한 기초가 없었던 나는 

듣기, 문법, 어휘, 문해력은 진작에 포기하고 시험 치는 얄팍한 스킬만 외우다 방학이 끝이 났다.

그렇게 호기롭게 다시 시험을 쳐봤지만 성적은 고만고만했다. 

역시 영어는 나랑 안 맞아하며 다시 좌절했다.


세 번째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토익은 이력서를 제출할 수 있을 정도로 기본 점수만 맞추고 회화를 중점으로 해보자라고 큰 마음을 먹고 6개월짜리 새벽반 회화수업을 비상금을 탈탈 털어 등록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체인의 영어회화 학원이었는데 학원비가 꽤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엔 학원비가 아까워 1월 추운 겨울 새벽바람을 맞으며 매일 출석을 했지만, 수업 인원이 많아서, 적극적으로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어떤 날은 한마디도 못하고 수업이 끝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결석하는 날이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미 학원비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여름이 채 되기도 전에 흐지부지 끝이 나고야 말았다.


네 번째는 

 전화영어였는데, 이 또한 대학원 다니던 시절에 일이다. 매일 가야 하는 학원은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니,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정하게 전화로 더군다나 1:1로 수업할 수 있으니 너무 좋겠다는 마음으로 덜컥 수업 신청을 했다. 그리고 수업 내용을 피드백해서 홈페이지에 올리면 수업료 환급도 된다고 하니 주머니 얇은 대학원 생에는 좋은 기회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미리 수업에서 말할 내용을 준비하지 않으면, How are you today? 하는 튜터의 인사말 외에는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전화가 오는 시간을 하루 이틀 거절하다 전화영어도 끝이 났다.


다섯 번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또다시 회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조금 독특한 형태의 학원을 찾았다. 영어를 사용하는 원어인 친구들이 포함된 그룹이 그날의 주제로 자유롭게 영어회화를 하는 형태의 학원이었는데 이곳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면 내 영어 실력도 어느 정도 늘겠지 라는 기대로 등록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 같은 생각으로 등록한 한국인 학생들이 대다수이고, 원어민 친구들은 소수였으므로 웬만큼 인싸기질이 있거나 영어를 잘하지 않는 이상 그 그룹에서 친구를 만드는 일은 적어도 내겐 애초에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연말에는 파티도 하고, 함께 술자리도 하고 교류하는 자리에 마지못해 따라가 앉아있어 봤지만, 말없이 그냥 웃다가 돌아오곤 했다. 


여섯 번째는

 사교육은 아니지만 EBS 영어책 교재로 매주 주말 스터디하며 회화하는 모임이었는데, 연령대도 다양하고 하는 일도 다양한 특이한 조합이었다. 종국엔 서로 너무 친해져서 매주 2시간씩 한국말도 수다 떨다 헤어지곤 했다. 


 이외에도 구구절절 적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사교육에 꽤 시간과 비용을 쏟았던 듯하다. 그땐 그냥 이렇게 하면 저절로 막 영어를 잘하고 좋아하게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서, 영어에 대한 막막함을 도움받지 못했던 그 시절에 대한 조금의 보상심리도 있었다. 어학연수를 떠나고, 외국에 체류하며 하나둘 경험을 쌓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묘한 열등감에 시달렸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내 영어실력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영어가 밉고 싫다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틈만 나면 영어에 대해 동경을 하며 완전히 외면하지도 그렇다고 정말 최선을 다하지도 않은 상태로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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