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나의 어릴 적 최애 만화는 아기공룡둘리였다.
TV에 방영되는 둘리 시간 맞춰 챙겨보거나,
집 앞 비디오방에서 빌려와 보는 둘리는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어느덧 말썽꾸러기 둘리와 그 일당들보다
고길동 아저씨의 고충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둘리를 보면 반갑고 설레는 이유가 있다.
한참 즐겁게 둘리를 보던 어느 날
무심코 흘려 들었던 둘리 주제가가 내 귀에 꽂혔다.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공룡
호이 호이 둘리는 OOO 내 친구"
응? OOO이라고?
내 친구 앞에 OOO 세 글자가 선명하게
내 이름 세 글자로 들렸다.
(원래 가사는 초능력 내 친구이다.
초능력이라는 단어가 내 이름과 단 한 글자도
비슷한 구석도 없는데,
희한하게도 선명하게 내 이름으로 들렸다. )
세상에 둘리가 나를 자기 친구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거야?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둘리 주제가 속 내 이름이 특별하게 느껴졌던지,
나는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내 이름 세 글자를 넣어 신나게 불렀다.
어쩐지 그 비밀은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일은 둘리와 나만의 은민한 비밀이 되었다.
진짜 가사를 알게 된 건 중학생즈음이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둘리를 잊고 살다가,
우연히 친구가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다
진짜 가사를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 OOO 이 내 이름이 아니라 초능력이었던 거야?
어딘가 이상했지만 내심 기분 좋았던
그 가사의 비밀이 드디어 밝혀졌다.
나는 내 이름이 너무 흔해서 별로였다.
나를 스쳐간 크고 작은 인연들 중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열 명은 넘을 것이다.
내 짝도, 같은 사무실 후배도, 심지어 선생님까지...
학기 초에 담임선생님이 그 친구들의 이름을 제일 먼저 기억하시는 것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흔한 이름 때문에
나 자신이 어디에서든 눈에 잘 띄지 않고 잘 기억되지 못하는 흔한 사람인 것 같아서 속상했다.
그래서일까 둘리가 내 이름을 무려 노래 가사에 넣어서 불러주는 경험은 참 특별했다.
부모님께 받은 내 이름은 내게 선택권이 없었지만,
그래도 온라인상에서 내가 활동하는 내 이름은
내가 원하는 정체성과 의미를 담아
내가 결정할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의 내 삶은 나 스스로 잘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