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호랭이 Feb 26. 2023

엄마가 된 나의 직업병

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나는 5년 차 엄마이다. 나도 모르게 생겨버린 엄마의 직업병 같은 게 생겼다.


1. 음식은 뭐든 작게 작게


아직은 씹기가 서툰 아이를 위해 음식조리 할 때도 씹기 편한 크기로 칼질을 하고, 하다못해 가위로 다시 한번 작게 만들어 준다. 그러다 보니 생긴 문제점. 어른음식도 그렇게 만든다는 거다.

친정엄마 생신날 식구들이 모여 고기를 먹고 있었다. 내가 고기를 구우며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있었는데, 그걸 보시던 친정 엄마가

"딸아 가위로 고기 다지냐? 젓가락으로 집지도 못하겠네 ~"

"어?"

정신 차리고 보니 아이 먹을 크기로 고기를 쫑쫑쫑 자르고 있었다.

한 번은 아이 준다고 물김치를 담느라 배추를 작게 작게 썰었는데 그렇게 자르고 보니 양이 너무 많은 거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덜어 김치를 담고, 나머지는 우리가 먹을 물김치를 담았다. 남편 역시 같은 반응.

"김치 씹을 게 없어~"

"그냥 먹어."


2. 강제 저염식


 아이가 이유식을 끝내고 일반식을 하기 시작한 처음에는 비슷한 메뉴라도 어른음식 따로, 아이음식 따로 냄비를 두 개 놓고 요리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설거지 거리도 두 배라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한 요리에 간을 약하게 한 다음 조리가 끝나면 아이 음식을 먼저 덜어둔다. 그리고 어른 입에 맞게 간을 추가하거나 맵기를 조절한다. 2% 부족할 때도 많지만 가뜩이나 바쁜 식사시간 효율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요리솜씨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간 보기를 자주 잊어버린다는 사실이고, 더 문제는 뒤늦게 간을 잘 못 맞추거나 간을 빼먹어서 심심한 음식이 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제 익숙해진 남편은 한입 먹어보고 남편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금이나 간장을 챙겨 온다.


3. 식품 성분표 확인하기


 아이가 없던 신혼시절,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슬리퍼를 끌고 집 앞 맥도널드에 들러 늦은 맥모닝으로 아점을 해결하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에는 어떤 음식을 배달해 먹을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가끔 집밥을 해 먹곤 했지만 음식 하는데 큰 관심도 없고, 솜씨도 별로인지라 해봐야 간단하게 차릴 수 있는 햄이나 어묵 같은 반찬에 시댁이나 친정에서 챙겨주신 반찬이 주를 이루곤 했다. 그랬던 내가 아이를 키우며 달라졌다. 예전에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구매할 땐 그저 가격이랑 무게 브랜드 정도만 확인했지, 뒷면에 빼곡하게 써진 성분표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생산된 재료를 사용했고, 어떤 식품첨가물이 들어갔는지 관심도 없었고, 그저 입에 맞고 맛있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유식을 시작하며 유기농과 무농약 제품의 차이를 처음 알게 되고, 건강한 식재료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하게 음식을 먹어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빼곡하게 쓰인 식품성분표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도 가끔 배달음식도 먹고 시판 음식도 먹는다. 완벽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최대한 덜먹고 절제하며 사는 것에 의의를 두며 산다. 가끔은 지나치게 수많은 식품첨가물이 배제된 건강한 맛에 적응이 안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아이도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한 길이라 생각하며 없는 솜씨로나마 가족을 위한 식탁을 준비한다.


4. 다른 아이들의 개월수 맞추기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가 몇 개월쯤 되면 보통 말을 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걷는지 등등 개월에 따른 발달과정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래서 어쩌다 아기들을 봐도 아이가 몇 개월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길 가다가 아이들을 보면 이제 몇 개월, 몇 살쯤 됐겠구나를 곧 잘 맞춘다.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어서 길을 가도 아이들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이들과 엄마들만 눈에 보인다. 참 신기한 일이다.

 또 하나, 산책로에서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커피를 들고 지나가는 엄마들을 보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아이낮잠시간에 맞춰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산책을 나와 바깥공기를 쐰다. 그리고 아이가 운 좋게 잘 잠이 들면 커피 한잔을 할 여유가 주어진다. 그마저 아이가 유모차에 타기를 거부하거나 낮잠을 안 자고 칭얼거리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지만. 나 또한 그렇게 커피를 수혈해 가며 그 시절을 견뎠다. 내 기준에선 그저 견뎠다고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코로나가 심해도 너무 심한 시절이라 어린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기도 겁이 났다. 온종일 답답한 집안에서 아이와 단둘이 있다 아주 잠시라도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길에서 그런 엄마들을 보면 그때의 나를 내가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5. 강제 암기 공부 하기

 

 아이가 공룡에 한참 빠져있을 때는 공룡이름을 줄줄 같이 읊었다. 아이만큼은 아니라도 웬만큼은 알고 있어야 아이의 놀이에 장단을 맞춰 줄 수 있다. 티라노사우르스 밖에 모르던 내가 요즘은 쉬지 않고 공룡이름 20개 정도는 거뜬히 이야기할 수 있다. 아이에게 영어노출도 할 겸 로보카폴리와 꼬마버스타요를 번갈아 가면서 본다. 비슷하게 자동차들이 많이 나오는 영상인데, 이름이 달라서 이름이 헷갈리거나 대답을 못하면 아이에게 여지없이 혼이 난다. 내가 이런 것도 알아야 해?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엄마는 극한직업이다.  


6. 예전보다 행복의 빈도가 늘어난 것


 육아를 하기 전에 나는 9년 동안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한 직장인이었다. 업계에서도 업무강도로 소문난 곳이었고, 그 안에서도 업무강도가 높은 부서에서 나름 힘들게 굴러가며 일했지만 육아는 또 다른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육아는 그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충분히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전보다 요즘 자주 웃고 요즘 자주 행복하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화내고, 또 금세 돌아서 사과도 하고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육아의 어려움에 매일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순수하고 엉뚱한 한마디에 박장대소하고, 따뜻한 아이를 내 품에 꼭 안으며 웃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   


그 외에도 아이가 자라 체중이 늘어가는 만큼 엄마의 팔 힘도 강해진다는 것, 아이의 언어로 어른과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아무리 시끄러워도 우리 아이 목소리는 들린다는 것, 방금 식사를 끝내고 수저를 내려놓으며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일 등등 많은 것들이 있다. 적어도 내게 육아는 아름다운 판타지는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하지만 엄마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어 예전보다 자주 행복하고 자주 웃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요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