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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Nov 29. 2022

울면 안 되긴 뭐가 안돼

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온다.

아이와 함께 창고에 넣어둔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꾸미기로 했다.

분위기도 낼 겸 캐럴도 함께 틀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역시 머라이어 캐리 언니 노래를 들어줘야지 ​


You better watch out

You better not cry

Better not pout

I'm telling you why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어린 시절 열심히 따라 불렀던 그 노래

"울면 안 돼"이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우는 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주실만큼 정말 나쁜 걸까?


울고 떼쓰는 행동을 하는 아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다는 뜻이겠지만

아이가 우는 게 당연하지

어째서 어른들은 산타 할아버지까지 불러와서

울지 말라고 했던 걸까?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툭하면 우는 울보였다.

울먹울먹 눈물만 보이면

"뚝! 울지 말랬지!" 하고

아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러면 서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소리도 못 내고 뚝뚝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난다.



속상해도 울고,

기분이 나빠도 울고,

화가 나도 울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아니란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부터 났다.


​운다는 행동은 나에게 부정적 의미의 행동이었다.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할 줄 몰라서

북받치는 감정이 그냥 눈물로 드러났다.

주체할 수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바보야 왜 말을 못 하니... 라며 나를 자책했다.

어쩐지 운다는 건 대단히 어른스럽지 못하고 부끄러운 행동 같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알 수 없는 우울감으로 매일 눈물바람이던 그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울면 안 돼 였다.


엄마가 울면 아이가 슬퍼한다.

엄마가 강해져야지 이렇게 약해서 어떡하니

하다못해 시력 나빠지니 울지 말란 얘기까지.


​슬퍼도 마음이 힘들어도

누군가를 위해 울지 않는 어른 이어야 했다.


​그렇게 점점 눈물이 줄어가는 중인 것 같다.

내 감정을 꾹꾹 눌러 담다 보니

내가 지금 슬픈지, 기쁜지, 우울한지

감정이 무뎌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저 아이와의 하루를 잘 살기 위해

좋은 마음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 애썼다.

내 슬프고 우울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달될까

애써 그 마음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엄마니까


​올해 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와 동생을 키워주신 할머니는

나에게 엄마보다 더 큰 존재였다.

할머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만큼

할머니는 내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


그랬던 나의 할머니가 하늘에 별이 되었다.


코로나로 2년 넘게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차디찬 요양원 침대에서 외롭게 혼자 떠나셨다.

언제 가는 한 번은 겪을 이별이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다가도

어느새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아이의 짐을 꾸리고

아이가 배고프지 않게 이른 저녁을 준비하고

기차표를 예매하고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기차를 탄다며 신난 아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밤늦게 도착한 시댁에 아이를 재워두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할머니께 절을 하고, 할머니 영정 사진을 보는데

생각만큼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냥 멍하게 잠시 앉아있다가,

혹여나 낯선 곳에서 잠든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울진 않을까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에서

난 별로 슬프지 않은 걸까? 왜 눈물이 나지 않는 걸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분명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눈물이 안 났다.

그렇게 잠을 청하고, 또 아이와 하루를 보내며 잠시 할머니 생각을 잊었다.


내 어린 시절의 전부였던 할머니를 떠나보냈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몫의 하루를 살아야 했다.

그렇게 아이가 잠든 깊은 밤 그제야 눈물이 조금 났다.


차라리 정신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면 마음이 좀 가벼웠을까

목전에서 터져 나올 듯 말 듯 한 울음은 나도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이 되면 아이를 보고 웃고 있었다.

할머니 미안해요.

할머니가 떠난 게 슬프지 않은 건 아닌데,

내 하루를 사느라 슬픔을 자꾸 잊게 되네요.


여전히 살다가 문득 할머니가 그립고 생각은 나지만

그 감정에 오래 빠져 있을 수가 없다.


​이렇게 서툴지만 글을 쓰며,

한걸음 떨어져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눈물조차 나지 않고 그저 막연히 답답했던 내 마음을 뚫어 줄 때가 있어서 참 고맙다.


​아이가 짜증을 부리며 울음이 길어질 때,

아이에게 울지 말고 이야기하라고

나 역시 아이의 울음을 듣기 힘들어 말릴 때가 있다.

하지만 우는 건 부끄럽고 나쁜 게 아니라고

우는 것 또한 내 감정을 다루는 소중한 수단이라고

아이에게 꼭 알려줘야겠다.


그래서 울어도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 봄이에게 선물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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