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조금씩 성장 중입니다.
2014년 이른 봄
당시 박사과정이었던 남자친구는 지도 교수님을 따라 1년간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연애 5년 만에 그는 미국에서 나는 한국에서 우리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우리에겐 함께 해 온 5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으므로, 1년 정도 떨어져 지내는 것쯤이야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그가 떠나는 날 공항에서도 생각이 많아 보이는 그와는 달리 울지 않고 씩씩하게 그를 배웅했다.
그랬던 내가 그가 떠난 후 조금 이상해졌다.
내가 아침에 출근할 즈음 그가 잠자리에 들 직전 잠시 통화를 하는 것이 유일하게 그와 닿는 시간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말은 되도록이면 그는 나와, 나는 그와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가 떠나고 맞이한 혼자만의 주말은 낯설다 못해 이상했다. 그가 없이 혼자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TV를 배경음악 삼아 멍하게 하루를 보냈다. 가장 견디기 일상을 살다가 문득 그가 그리운 순간이었다. 퇴근 후 쪼르르 그에게 달려가 회사에서 있었던 서럽고 속상한 마음을 풀곤 했는데, 이제 쪼르르 달려가 쫑알 댈 곳이 없었다. 며칠간 묵혀 두었다가 뜬금없이 속상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영 김이 샜다. 좋은 얘기만 나누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갑자기 속상한 일을 털어놓기가 꺼려졌다. 너무나 간절했던 그와의 통화 시간도 점점 줄기 시작했다. 30분에서 10분으로 5분으로... 바쁜 날은 전화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미묘하게 겉돌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나는 익숙한 곳에 남아 가족도 있고, 친구도 만날 수 있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지만 당시엔 내 힘듦과 외로움이 먼저라 그의 마음을 보듬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서운함과 외로움으로 마음들로 마음이 자주 오르락내리락할 때 드라마를 한편을 만났다.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였다. 어차피 남아도는 주말이니 밤잠을 자지 않고 몰아서 정주행을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연애를 시작한 나정(고아라) 이와 쓰레기 오빠(정우)가 결혼을 목전에 두고 한국-호주에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고, 결국은 이별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당시의 내 마음과 너무 비슷해서 엉엉 울곤 했다.
결혼식을 미루고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던 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호주로 떠난 나정은 자신의 선택이 쓰레기 오빠에게 미안했고, 쓰레기 오빠는 미안해하는 나정의 마음을 알기에 그리고 오빠라는 이유로 늘 괜찮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오히려 그래서 배려하다 둘은 이별을 맞게 된 것이다. 그 드라마를 보며 제발 두 사람이 영원히 이별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내가 그와의 인연의 끈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한 달, 두 달 주말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그에게 의존적인 연애를 해왔는지 생각해 봤다. 그가 없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같이 방구석에만 벽혀있는 내가 싫었다.
그와의 연애도 그 이전의 연애에서도 애써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속으론 상대가 떠날까 두려워하며 상대에게 많은 부분을 맞추려 애썼다. 음식 취향도 취미도 관심사도 우린 모든 게 달랐지만 나보다는 색깔이 분명한 그의 취향을 따랐다. 그러다 조금만 관계가 불안하면 상처받을까 두려워 한발 빼고 도망갈 궁리부터 했다. 늘 상대에게 맞추는데 익숙했으므로 내가 뭘 원하는지, 혼자서 뭘 할 수 있는지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와 헤어지고 싶진 않았으므로 그를 잘 기다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먼저 나의 마음을 말해보았다. 서운하면 서운한 대로 고마우면 고마운 대로 내가 먼저 살핀 상대의 기분이 아닌 나의 기분과 마음을 표현하려 애썼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를 나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대상으로 대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 혼자인 나도 괜찮아야 했다. 집밖으로 나와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고, 혼자 영화를 보고, 밥도 먹고, 혼자 여행도 다녔다. 문득 그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혼자 시간이 주는 여유도 꽤 괜찮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가 돌아왔다.
내 할 일에 푹 빠져 가끔은 데이트도 미룰 만큼 바빠진 내 모습을 조금 낯설어했지만, 우린 이내 서로에게 잘 적응했다. 나도 나의 모든 시간을 그에게 할애하지도, 그도 모든 시간을 나에게 오롯이 할애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여전히 서로가 1순위긴 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또 만나면 실없는 농담에도 낄낄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와의 연애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지금 내 옆에 누워 가르랑 코를 골며 그와 똑 닮은 아들과 똑 닮은 자세로 자고 있다. 9년의 연애 끝 결혼 5년 차가 되었다. 날씬하다 못해 날카로운 인상이었던 그때 그 오빠는 이제 허리춤이 동글동글한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아이가 잠든 밤 나는 글을 쓰고, 영어 공부를 하고 블로그도 하고 내 시간을 채워간다. 그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같이 영화도 보고, 예능 한편 보며 깔깔 대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까무룩 잠이 든다.
그때 혼자 남겨진 시간 동안 나와 잘 지낼 궁리를 하지 않고, 그를 원망만 했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그 시간이 내게 가져 다 준 의미는 무엇일까? 그에 소중함과 고마움을 깨닫게 했고 당시엔 지지리 궁상맞고 우울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이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어 외롭게 해주어 감사한 마음이다.
외롭다
오롯이
내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 무대의 주인공이었다가 내려왔을 때 비로소 내가 무대 위에서 소란스러웠음을 알 수 있듯이, 외로움은 무대 위도 객석도 아닌, 무대 뒤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수많은 역할로 존재하던 내가 아무 장치 없이 혼자임을 느낄 때 만나는 감정. 오랫동안 감당할 수 없는 감정임에 틀림없지만, 우리는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