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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Jan 31. 2024

모성애를 드라마로 배웠습니다.

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아이가 태어났다.

바로 그날 아침 나는 병원에 다녀왔고, 곧 아이를 만나겠다는 선생님의 말을 들었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TV 도 보고 소파에 기대 좀 쉬기도 했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침대에 달아줄 흑백모빌을 손바느질로 만들고 있었다. 조금씩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했지만, 진진통은 정말 숨도 못 쉬게 아프다기에 진통이 온 줄도 모르고 꾹 참으며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날밤 나는 나의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얼떨떨한 밤이 지나고,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지새우고 아직 채 눈도 뜨지 못한 속싸개에 꽁꽁 쌓여있는 발간 아이를 내 품에 안았을 때도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막 아이를 보면 엄청난 사랑의 감정이 몰려올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상하다. 나는 모성애가 없는 건가? 


 나는 어린 시절 보았던 드라마 속에서 보고 만든 엄마의 이상적인 모습을 내 머릿속에 만들었다. 언제나 자식에게 헌신적이고, 자식들이 아무리 속썩이고, 못됐게 행동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식만을 생각하는 엄마. 그런데 나는 아이보다 내 몸이 아픈 게 먼저였고,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린 모든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엄마는 이게 아닌데 어쩌지...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처음 아이와 단 둘이 남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미안함과 두려움이었다. 모성애도 없는 나에게 온 가냘픈 이 아이가 참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그냥 그때부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책도 영상도 부단히 찾아보았다. 모유수유가 좋다고 하니 어떻게든 모유수유를 해보겠다고 애를 썼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었다. 책 육아가 좋다길래 유명하다는 책을 사모으고,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장난감도 열심히 검색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투자하겠다며 비싼 물건도 고민하지 않고 턱턱 잘도 사들였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으니까.


 그런데 세상에 보이는 좋은 엄마들을 볼 수록, 내가 육아서 속에 이상적인 엄마와 나의 괴리가 느껴질 때마다 나는 더욱 죄책감에 빠졌다. 좋은 엄마가 돼야 하는데, 나도 드라마 속에 엄마들처럼 헌신적이고 착한 엄마여야 하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끝없이 나를 닦달했다.


한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을 안고 젖을 먹인다는 건 기적이다. 그 생명은 열 달 동안 내 배 속에서 살을 먹고 자랐다. 내 몸에서 나온 생명이고 내 젖으로 생명의 밥을 주었다. 아이를 안고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고 어르고 야단치고 구박하고 칭찬하고 미워하고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고 아파하고....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뭔가? 세상 그 어느 것 보다 큰 사랑이다. 엄마는 그냥 사랑이다.
<엄마심리수업, 윤우상>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에서 내가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많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랬다. 그냥 사랑을 하고 있었음을, 더 잘하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들렸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나를 갉아먹는 것이 더 좋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엄마 사랑해요!"를 외친다. 부족한 엄마라 오랜 시간 믿어 온 그런 나를 아이가 사랑한단다. 그리고 나도 아이를 사랑한다. 


내 마음대로 모성애를 정의해 보기로 한다.

 수십 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 찍은 사진 속에서도 단박에 우리 아이를 찾아내는 일, 한참 멀리서도 엄마하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일. 아이가 좋아하는 공룡의 이름을 50개쯤은 눈감고도 줄줄 외우는 일. 아이의 늘어나는 몸무게만큼 번쩍 안아 올릴 수 있는 팔 힘이 생기는 일. 맛있는 것, 재밌는 걸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일. 그것이 나만의 모성애라고 정의 내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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