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설날아침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친정에 갔다가 짐을 가지러 다시 시댁에 들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같은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놀러 오셨다.
나도 오며 가며 몇 번 마주친 분인데,
아이들 보기가 귀한 곳이라 그런지
우리 아이나 조카들을 보면 지나치지 않으시고,
예쁘다, 귀하다 인사해주시곤 했다.
마침 이제 나가는 길이라고 하셔서 인사를 드리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내손을 꼭 잡으시더니
"새댁이는 집에서 가만히 노는데 얼굴이 와이래 못하노, 별일 없제?"
하신다.
별뜻이 없는 경상도식 안부인사라는 걸 알면서도
정확히 내 고막을 거슬리게 하는 그 문장
"집에서 가만히 논다."
당황하거나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웃어버리는덕에,
속없이 호호 웃으며
아니에요 잘 지내고 있어요. 하고 마무리를 했다.
예전 같으면 그 말이 내내 마음에 남아 속절없이 나를 깎아 내릴텐데
재빨리 속상한 마음을 털어내 본다.
언젠가 들었던 내면소통, 회복탄력성의 저자 김주환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았다.
상대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인정하지 않음>이다.
상대의 말에 화가 나고, 상처를 받는 이유는 상대의 말을 내가 그렇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을 하든 말든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를 비난할 마음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인정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놀다"
1. 동사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
2. 동사 직업이나 일정히 하는 일이 없이 지내다.
3. 동사 어떤 일을 하다가 일정한 동안을 쉬다.
1번 의미의 놀다라면 좋아하는 일을 찾는 중이니 맞는 것 같긴 하고,
2번 의미의 놀다라면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다.
나 역시도 논다는 말의 의미를 2번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전업주부도, 엄마의 역할도 직업이나 일정히하는 일이 없이 지내는 일은 아니기에
할머니의 말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이런 말은 처음 듣는 말이 아니라 왜 내가 그렇게 그 말에 민감하게 반응할까를 생각해 봤다.
그리고 우연히 읽은 책에서 조금 실마리를 얻었다.
논다 → 돈을 벌지 않는다. →돈을 벌지 않는 일은 가치가 없다고 자동사고가 연결되며,
돈을 벌지 않는 나는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에 관한 나의 오랜 경험과 생각이
나의 내면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왔던 것이다.
집에서 논다는 말은 곧 너는 가치가 없다는 말로
확대해서 들렸으니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비슷하게 나를 깎아내린 말로는
"남편이 돈 잘버나봐 집에서 애키우고 놀고"
"봄이는 좋겠다. 엄마가 집에서 노니까." 등등이 있다.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생활하는 동안
나는 주로 집이라는 공간에서
집안일도 하고, 내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며 시간을 보낸다.
경제적으로 큰 수익이 없고,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성과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논다고 퉁치다니...
내 일과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항상 내게
앉아서 좀 쉬라는 말을 하는데,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의 말에 굳이 마음 상하지 않으리 결심해 본다.
(이렇게 쓰고도 글로 굳이 남기는 걸 보면 완전히 괜찮지는 않았나 보다 ㅎㅎ
예전에 비해 상처를 받는 정도가 조금 약해진 것에 감사할 뿐..)
마음의 앙금이 쪼금 남아 남편에게 물어본다.
"아까 그 할머니가 나 집에서 논다고 하시던데, 나 집에서 놀아?" 하니
남편이 깜짝 놀라며
"그 할머니는 왜 그런 말을 한데, 시골할머니가 그냥 하시는 말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말어. 여보가 놀긴 뭘 놀아. 우리 집에서 제일 바쁜데"
라며 나를 위로해 준다.
오랜 기간 훈련받은 위로 능력이 상승한 남편을
기특해하며 쪼금 남아있던 앙금도 탈탈 털어내어 본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흘러 다소 무례한 말을 들어도 당황해 하지 말고 웃으며
"그럼요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덕분에 편하게 집에서 좋아하는 일 하면서 잘지내요. 그리고 하루 너무 재밌게 잘 놀고 있어요." 하고 말을 해보는 나를 상상해 본다. (과연 언제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