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 안녕하세요! 이 가방 살 수 있나요?
-. 네 그럼요. 어디서 만날까요?
"예~ 여보 이거 팔렸어!"
"응? 뭐?"
"그 가방 있잖아. 여보가방!"
"..."
8년 전 남자친구의 입사 최종통보 소식을 들은 날 나는 곧장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다 내 눈에 딱 들어온 내가 평생 들어본 가방보다 비싼 서류가방을 샀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몸고생 마음고생한 그에게 멋진 입사기념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선물을 들고 그를 만나 우리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으며 선물을 건넸다.
"어? 이거 뭐야 고마워..."
"응? 반응이 그게 다야? 나 되게 큰 맘 먹고 산 건데"
"아냐 아냐 고마워"
그때 그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그리고 우린 결혼을 했다.
남편이 회사기숙사에서 사용하던 짐을 신혼집으로 들이며, 짐을 정리하는데 눈에 익은 가방주머니가 보였다. 그 안엔 내가 입사선물로 사준 그 서류 가방이 들어있었다. 처음 가방을 사면 모양보존을 위해 들어있는 종이뭉치가 그대로 든 채로. 내가 그 가방을 선물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열어보지도 들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보관해 둔 것이었다. 이 남자 눈치가 없는 건지, 예의가 없는 건지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뭐야 ~ 이거 내가 입사선물로 사준 거잖아. 한 번도 안 든 거야?"
"어? 아 그게... 알잖아 나는 노트북 들고 출장 다니니까 그 가방 들일이 없더라고"
그랬다. 출장이 많은 직군이라 업무용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일이 많은데 노트북도 들어가지 않는 모양만 예쁜 서류가방은 남편에게 불필요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다고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이라도 했으면 차라리 환불받고 튼튼한 노트북가방을 사줬을 텐데 이 남자도 어지간하다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마음을 무시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옷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그 가방을 볼 때면 그날의 서운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 가방을 치워버리기로.
"여보 이거 팔아버리자."
"왜? 그거 여보가 나 입사선물로 사준 거잖아. 비싼 거라며, 아까운데..."
"이거 애한테 나중에 유산으로 물려줄 만큼 명품도 아니야. 어차피 들지도 않는데 옷장에 있으니 거슬려 팔자. 그래도 여보 거니까 허락은 받을래"
그렇게 산 가격에 20%도 안 되는 가격으로 중고마켓에 판매글을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매자를 만나 판매를 하게 되었다.
구매자가 다녀간 후 남편이 어색하게 나를 보며 웃는다.
"미안 여보. 여보가 사준 건데, 내가 들기엔 좀 안 맞았어. 그래도 진짜 미안."
"괜찮아. 나도 팔아버리니까 속 시원하고 좋네 뭐. 이걸로 우리 오늘 치킨 사 먹을까? 내가 쏜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그 사람이 원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좋아서 내 만족에 사준 물건이었다. 그 가방을 들고 멋지게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했지 그것이 그 사람에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차마 못했다. 그래놓고 내내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무심할 수가 있냐며, 남편에게 서운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일이 떠올랐다. 차마 들고 다니지는 못해도 그 가방을 보며 남편도 내가 생각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긴 했을 텐데, 그것도 좀 미안했다.
그 가방을 판 돈으로 주문한 고소한 치킨과 맥주 한잔에, 그간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서운함을 털어버리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많은 날들엔 서로에게 불필요한 배려보단 솔직한 대화가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