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아침을 먹는데 아이가 불쑥 이렇게 묻는다.
"엄마는 왜 직업이 없어요?"
아빠는 회사에 가고, 나는 어른이 되면 버스 운전기사가 될 거거든요. (요즘 봄이의 꿈은 버스운전기사다) 그런데 엄마는 직업이 없잖아요? 어른이 되면 돈을 벌어야 해서 아빠가 회사에 간다고 엄마가 그랬잖아요. 근데 엄마는 직업이 없으니까, 내가 어른이 되면 나랑 아빠가 번 돈으로 생활하는 거예요?
아이의 시선에서 출근이라는 이름으로 매일아침 직장이라는 곳에 가지 않고, 월급을 받지 않는 엄마는 직업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아이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술만 달싹이다 말없이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렇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옆집에 사시는 이웃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평소에 큰 교류는 없지만 오며 가며 인사정도 나누는 사이기에 나도 반가운 마음에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려는데 나를 보며 하시는 말씀
"요즘 어디 다니는 데 있어요?" 하신다.
이 질문이 무슨 뜻일까? 그 다니는 데는
혹시 직장을 말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아뇨, 다니는데 없는데요." 했더니
"아 그렇구나, 나도 그래. 우리 백수야 호호호 ~"
하신다.
그리곤 아차 싶으셨던지,
"아이고 참 아기 키우는데 백수는 아니지, 난 이제 애들이 다 컸으니까..." 하시는데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어색해져 버린 엘리베이터 속의 공기.
때마침 감사하게도 내가 누른 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문이 열린다.
가볍게 목례를 하며 인사를 드리고 서둘러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집으로 돌아와 차가운 커피 한잔을 내려 들고는 소파에 깊게 몸을 기대 본다.
아이의 눈에 우리 엄마는 매일 운동 다니고, 집안일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못내 속상했다. 딱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아이는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괜한 자격지심이 톡톡 나를 자극한다.
직업, 전업주부, 나라는 사람, 월급... 이런 단어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맴돈다.
나도 꿈도 있었고, 직업도 있었던 사람인데...
지금 나는 뭐지?
나는 직업이 전업주부다. 그런데 오랫동안 내가 그 직업을 가진 사실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나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으나, 어쩐지 나의 일 앞에선 당당하지 못했다.
전업주부라면서 살림을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것도 그렇고, 소비를 주로 담당하는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나를 알아봐 주지 않으니 나의 자존감은 점점 쪼그라 들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이라도 마주하는 날이면 예전처럼 울고
불고 난리를 피우진 않더라도 여전히 마음에 생채기
하나쯤은 남는다.
그럴 땐 도리가 없다. 참나 내가 진짜 집에서 노냐? 모르는 소리들 하고 있어. 하고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 수밖엔...
예전에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보았다.
아이들 눈에 어른의 삶은 매일 야근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우며 힘들고 지겨운 삶이라 어른이 되기 싫단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하고 물어보니, 엄마아빠로부터 보고 들은 내용이라고 했다.
부모님의 삶의 태도를 통해서 아이들은 어른의 삶을 그렇게 그리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아이에게 인생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려주려 애쓰기 전에 나부터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살면 아이도 그 모습을 보고 따라 배울 테니까 말이다.
나는 내가 잘 되기를 누구보다 애틋하게 바란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나는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 나라는 사람을 좀 더 인정하고, 기특하게 여겨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오늘도 뭐라도 기록으로 남겨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