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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Nov 30. 2021

돌밥요정과 닥터비데

어쩌다접어든 남편과의 단짠단짠 공동육아 기록

돌밥 요정 아내


퇴직한 남편, 전업주부 아내, 그리고 기관에 다니지 않는 아이. 주로 집에 머무르는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일과는 하루 세끼 밥 차려 먹기가 아닐까 싶다. 아침을 차리고 설거지하고 잠시 숨을 고르면 금세 돌아오는 점심시간. 잠깐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금세 저녁 먹을 시간이다. 말 그대로 돌밥돌밥 일상이다. 남편이 회사에 다닐 때엔 내 밥은 차치하고, 아이의 삼시세끼 차리는 게 큰 일과이긴 했는데, 남편 한 명이 추가되니 어른 밥까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니 설거지 거리도, 음식 하는 시간도 더 늘어난다. 오죽하면 남편이 나더러 돌밥 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무려 요정이라고 불러주니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까.

 나는 음식을  못하는 데다 손도 느리다. 거기다 매끼 메뉴를 정하고, 거기에 맞게 장을 봐야 하니 종일 밥타령만 하다 하루가 끝나는것 같다. 더군다나 남편은 식탐도 없고 그저 배만 부르면 그만인 사람이었다. 그러니 매끼  먹고 싶은  없어?라고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글쎄... 없는데"였다. ... 메뉴라도  같이 골라주면  준비하는   힘들 텐데, 당최 먹고 싶은  없다니 도움 얻기를 포기한다. 고민 끝에  가지 궁리를  본다


1. 식단 메뉴 짜기는 어린이집 식단표를 참고한다.

 어린이집 식단표는  시군 지자체마다 확인할  있는 사이트들이 다양하게 있고, 그중에서 괜찮은 곳을 선택해서 월별 식단을 참고했다. 제철음식을 먹일  있고, 영양도 어느 정도 챙길  있다는 점이 괜찮은  같다. 어른 음식은 여기에 양념을 추가하거나, 간을 추가해서 먹는다. 대신 참고만 한다. 모든 것을  맞추어서 해주긴 어려우니까.

   

2. 냉장고 파먹기는 기본

 다 못 먹어서 냉동실에 얼려 묵혀둔 음식들, 양 조절 실패해서 남은 음식과 식재료들 최대한 처리하려고 노력 중이다. 겨울에 봄에 얼려둔 냉이나 쑥을 국 끓여먹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도 하다 보니 요령이 늘어간다. 처음 가정보육을 시작했을 때에 비해서 냉장고의 여유공간이 많이 늘었다. 눈에 띄는 식재료들을 가지고 유튜브나 포털 검색을 해서 과감하게 요리를 시도해본다. 나 같은 곰손도 요리하기 편한 세상이다.


3. 하루 한 끼는 한 그릇 음식

 밥하는 것도 바쁘지만 정말이지 설거지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그래서 하루 한 끼는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로 해결 가능한 한 그릇 음식으로 정한다. 카레, 볶음밥, 덮밥 메인 재료만 살짝살짝 바꿔가며 요리조리 한 그릇 음식으로 해결한다. 설거지 스트레스만 줄어도 진짜 만세를 외친다.


4. 하기 싫으면 안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대단히 음식을 잘 차려먹지 않아도 삼시 세 끼는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그게 쉽지 않았다. 아이 밥은 국에 반찬 3가지 이상을 지키면서도 나는 대충 서서 국에 후루룩 밥을 말아먹거나 김하나로 대강 때우는 날이 많았다. 왜 이러고 있나 싶으면서도 본인 밥을 다 먹으면 놀자고 조르는 아이를 두고 느긋하게 음식을 먹거나 준비하는 것을 불가능했다. 그나마 앉아서 덜 식은 밥을 먹는 날은 남편이 있는 주말 정도. 공동육아 기간은 남편이 있으니 그냥 허기 달래기, 끼니 때우기가 아니라 음식을 차려먹으려 노력했다. 그 욕심이 과한 건지 종일 돌밥돌밥 하다 보면 정말이지 밥하기 싫은 순간이 온다. 그럴 땐 과감히 안 한다 를 선택했다. 가끔은 배달 음식의 힘을 빌려본다. 밥은 역시 남이 해준 밥이 최고다. 남 이해준 밥 편히 먹고, 설거지 한 타임 건너뛰고 나면 다음 식사 준비할 힘이 생겨난다.


뭐든 즐겁게 해야 하는  같다. 나와 가족을 위한 상차림이면서,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기보단 차라리 내려놓고   힘들게 대충   대충하기로 했다.


닥터비데 남편

 공동육아 기간 동안 남편의 주요 임무는 아들의 화장실 뒤처리 업무이다. 걷지도 못한 신생아 시절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여전히 아이 돌보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특히나 아이가 커서 체중이 늘수록 아이를 안는 일이 몸에 더 무리가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일을 남편이 요즘 많이 나누어서 해준다. 그래서 남편에게 닥터비데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한때 사회에서 촉망받던 공학박사 였으나 현재는 아들 전용 비데로 맹활약 중이시다. 더불어 목욕도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는 일도 아빠의 몫이다. 덕분에 나는 몸이 좀 편해졌지만, 반대로 남편이 요즘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며 괜스레 끙끙댄다. 참 웃픈 일이다.

 감정 기복이 크고 성격이 급한 나에 비해 남편은 별로 감정 기복도 없고 느긋한 편이다. 가뜩이나 성격도 급한데 쌓인 집안일도 처리해야 하니 아이가  일을 언제나 내손으로 빨리빨리 대신 해치우는 편이었다.  입는 일도,  먹는 일도, 장난감 정리하는 일들도. 그런데 남편은 아이에게 하나하나 스스로   있는 일을 주고  기다려 준다. 말로는 남편 본인 몸이 편하기 위해서란다. 이유야 어쨌든,  안된다고 울며 짜증 내던 아이를 차분히  기다려주니 아이도 조금씩   있는 일이 생긴다. 물론 아직 손끝이  여문 아이는 다시 엄마 아빠의 손을 거쳐야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다. 여유롭못해 느긋해서 가끔 나의 속을 부글부글 하게 하는 남편의 성격이, 아이를 기다려주고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는 최고의 성격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돌밥요정과 닥터비데의 바쁜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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