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나의 취향
꼬꼬마 아이를 데리고 전투육아를 하던 몇 년 전 어느 날
출근하는 남편이 무언가 생각난 듯 내게 말했다.
"여보 이거 한번 들어봐. 여보 좋아할 것 같아."
아이가 있으니 TV 도 휴대폰도 못하고 답답하고 지루할 때
라디오라도 켜두면 위로가 되지 않겠냐며
남편이 내게 추천해 준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남편의 말을 듣는데 문득 깨달았다.
아. 참 나 정말 좋아했었지. 라디오.
10대 시절 홀로 방에 틀어박혀 새벽까지 라디오를 듣는 것이 나의 낙이었다.
난생처음 용돈으로 구입 한 하늘색 네모난 파나소닉 아날로그 라디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시간이 다가오면
안테나를 쭈욱 빼고
최대한 지지직 소리가 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파수를 맞추어 준 다음
공테이프를 하나 넣고 탁 닫아주면 준비 완료.
그렇게 한참 라디오에 푹 빠져있다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녹음버튼을 얼른 누른다.
그러다 노래가 끝나기 전에 광고가 나오면
어찌나 아쉬운지...
그래도 그때 들었던 음악들, 라디오 DJ의 이야기들은
그저 이유도 모른 채 우울하고, 때론 답답했던 그 시절에
말동무가 되어주고, 위로를 건네준 고마운 친구였다.
그래서였을까?
남몰래 라디오 DJ를 꿈꾸기도 하고,
라디오 작가가 되는 꿈도 꾸었다.
살다 보니 그 꿈도, 라디오와 함께 했던 시간들도 점차 멀어져 갔지만.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남편이 내게 라디오를 추천해 주던 그날
10대 시절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DJ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는 참 포근하고 따뜻했다.
다정하게 내게 오늘 아침의 안부를 묻는 듯한 오프닝도 참 좋고
날씨를 알려주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위로도 공감도 받았다.
잊어있었던 내가 좋아했던 음악이 나오면
반가워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이제 세심하게 주파수를 맞출 일도,
공테이프를 넣고 음악을 녹음할 일은 없지만
라디오는 나를 위로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영상 매체에 밀려 라디오는 사라질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지만,
라디오만이 줄 수 있는 오롯이 소리에만 의존하는 그 감성은
대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김창완 아저씨가 23년간이나 함께한 프로그램의 하차를 하셨다고 한다.
자주 만나던 반가운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는 것처럼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예전처럼 매일 함께 하지는 못해도,
언제나 생각날 때면 늘 계실 줄 알았는데.
슬픈 사연에 목이 메어 울먹이는 그 목소리도,
아이들의 사연을 소개하시며 즐거운 웃음도
아침을 함께 했던 그 음악도 참 좋았습니다.
귀로 듣던 그 소리들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반가운 목소리로 만날 날이 있겠지요?
언제나 감사했습니다. 아저씨